루나 미술사 Luna Art History · 2026
Vol
01
No.1 · 20부작
라스코 동굴
SPECIAL ISSUE · 첫 그림이 시작되는 자리

동굴에서 신전까지

약 3만 년 전 어느 깊은 동굴 안에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들어가 벽에 짐승을 그렸습니다. 그 손을 따라가는 첫 번째 호.

LUNA WHALE · ART HISTORY 54 PAGES · 4 PARTS
EDITOR'S LETTER · 여는 글

안녕하세요. 〈루나 미술사〉의 첫 호를 펼쳐 주셔서 반갑습니다.

미술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시작해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보통 미술사를 펼치면 그리스 조각이나 르네상스의 화가들로 들어가는 책이 많지요. 그런데 그렇게 시작하면 한 가지가 빠지는 것 같았어요. 그보다 훨씬 오래 전, 그러니까 그리스 사람들이 신전을 짓기 약 2만 년 전쯤, 어느 깊은 동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횃불을 들고 들어가 짐승을 그렸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손을 빼고 미술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쩐지 첫 페이지를 건너뛰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첫 호의 자리를 그 동굴에 두기로 했습니다. 라스코, 그리고 알타미라. 1940년의 어느 가을, 프랑스 시골에서 사라진 강아지를 찾아 헤매던 네 명의 소년들이 우연히 들어선 동굴이었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만나 보는 것에서 우리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갑니다. 나일 강, 그리고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두 큰 강 옆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도시를 짓고, 글자를 만들고, 신전을 세웠어요. 이집트의 파라오와 메소포타미아의 왕은 자기들이 죽고 나서도 누군가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랐고, 그 바람이 미술이라는 형태로 남았습니다. 첫 호의 4부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한 가지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 미술은 처음부터 사람의 가장 깊은 두 가지, 즉 '두려움'과 '바람'에서 출발한 것 같다는 사실 말이지요.

이 잡지는 어렵지 않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곁에 두고 한 페이지씩 천천히 넘기시면 좋겠어요. 한 호에 50쪽 남짓이고, 4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부는 그 시대가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보여 드리고, 두 번째 부는 사람을, 세 번째 부는 작품을,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부는 그 시대의 일상에서 흘러나온 작은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같은 것들이지요.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자면, 이 잡지의 그림들은 거의 다 박물관에서 무료로 공개한 진짜 사진들입니다. 화면이 작더라도 한 번씩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보아 주시면 좋겠어요. 3만 년 전 어느 동굴 화가의 손이 우리 손가락 끝까지 오는 길은 의외로 짧습니다.

그럼 천천히 넘겨 주세요.

2026년 5월 · 루나웨일 미술사 편집실
EDITOR — Luna Whale
02
CONTENTS · 목차

한 호의 네 부

A

시대의 풍경

라스코의 동굴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미술이 처음 자리 잡은 다섯 풍경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P.04 – P.15
B

이름이 남은 사람들

인류 최초로 이름이 남은 건축가 임호테프, 종교를 통째로 바꾼 파라오 아크나톤, 그리고 그의 아내 네페르티티.

P.16 – P.27
C

그 손이 남긴 다섯 점

라스코의 〈뛰는 소〉부터 투탄카멘의 황금 가면까지. 한 점씩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P.28 – P.39
D

그들의 한 끼, 한 곡, 한 벌

그 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떤 그림 도구를 썼고, 어떤 노래를 들었을까요. 본문 사이에 흘려 둔 다섯 가지 잡학.

P.40 – P.51
03
A
PART A · 5 STORIES · 시대의 풍경

동굴, 강, 그리고 피라미드

우리 이야기가 시작되는 자리는 한 곳이 아닙니다. 프랑스 남서부의 깊은 동굴에서 시작해, 이집트의 나일 강을 따라 내려가고, 메소포타미아의 두 큰 강 옆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이집트의 신전과 피라미드 앞에 멈춰 섭니다. 30,000년이 그 풍경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미술의 첫 페이지는 동굴에서 시작됩니다.
04 · CHAPTER OPENER
04
PART A · 다섯 풍경

시대의 다섯 풍경

한 시대 안에서도 곳마다 풍경은 다릅니다. 그 다섯 자리를 차례로 보여 드릴게요.

A1

1940년 가을, 라스코의 동굴 입구

사라진 강아지를 따라 들어간 네 소년 · P.06
A2

나일 강의 어느 해 질 무렵

강 한 줄기가 만든 한 나라 · P.08
A3

메소포타미아의 두 강 사이에서

진흙 벽돌과 글자가 함께 태어난 자리 · P.10
A4

파라오의 어느 한낮

신과 왕이 같은 사람이었던 시대 · P.12
A5

기자의 피라미드 앞에서

왜 그렇게 큰 무덤이 필요했을까 · P.14
05
A · 01 · 라스코
라스코 동굴 발견 1940
1940년 9월 12일, 프랑스 도르도뉴의 깊은 동굴 안 — 횃불에 비친 1만 7천 년 전의 황소 그림.
06
A · 01 · 1940년 9월 12일 · 프랑스 도르도뉴

사라진 강아지를 따라가다가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발견은 어느 평범한 가을 오후, 한 마리의 강아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40년 9월 12일,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의 작은 마을 몽티냐크에 사는 열여덟 살 소년 마르셀 라비다는 친구 셋과 함께 산책을 나섰습니다. 함께 가던 강아지 로보가 갑자기 어느 구덩이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 구덩이는 며칠 전 큰바람에 뽑힌 나무 뿌리 자리였는데, 안쪽이 의외로 깊어 보였습니다. 네 소년은 서로 한 명씩 횃불을 들고 그 안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지금 우리 모두가 압니다. 그러나 그날 그 네 명이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의 기분은 한번 상상해 보시는 게 좋겠어요. 횃불을 들어 천장과 벽을 비추는데, 거기에 거대한 황소가, 사슴이, 야생 말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세로 그려져 있었던 거예요. 한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가요. 약 17,000년 전 어느 사람의 손이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어른들이 그 자리를 확인해 본 결과, 동굴 안쪽으로 길이가 250미터쯤 이어졌고, 그 안에 그려진 짐승은 약 600마리, 새겨진 그림까지 합치면 약 2,000개에 달했습니다.

그 후로 동굴은 한참 동안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1963년에 그림 위로 곰팡이와 이끼가 자라기 시작했어요. 사람의 입김 속 이산화탄소와 미생물이 1만 7천 년을 버텨 온 그림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1963년 동굴은 폐쇄되었고, 지금은 아주 가까운 자리에 똑같이 만든 복제 동굴 〈라스코 II〉가 일반인을 받습니다. 진짜 동굴은 지금도 그 자리 그대로 잠들어 있어요. 사람의 발이 다시는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요.

발견일1940.09.12
위치프랑스 도르도뉴
시기약 BC 17,000
유산1979 유네스코
한 마리의 강아지가 우리에게 1만 7천 년의 시간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산책 길에 강아지가 어디로 들어갔는지를 잘 살펴 보아야겠어요.
07
A · 02 · 나일
나일 강의 어느 해 질 무렵
BC 3000년경 황금 시간의 나일 강 — 매년 검은 비옥토를 남기던 그 강 한 줄기.
08
A · 02 · 나일 강 · BC 3000년경

강 한 줄기가 한 나라를 만들 때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두고 한 줄로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다." 정말 그랬어요.

나일 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매년 여름이 되면 일정한 때에 한 번씩 넘쳐 흘렀어요. 7월에서 9월 사이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비가 많이 내리면 그 물이 천천히 아래로 흘러 내려와 이집트 평야 전체를 한 자 정도의 깊이로 잠갔다가, 10월쯤 다시 빠져 나갔습니다. 물이 빠지고 나면 그 자리에는 아주 검고 비옥한 흙이 한 자 두께로 쌓여 있었어요. 이집트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케메트(Kemet)〉라 불렀는데, 그 말의 뜻이 바로 '검은 땅'입니다.

강의 흐름이 정확하니 이집트 사람들의 시간도 자연스럽게 정확해졌습니다. 매년 같은 때에 한 번씩 일어나는 그 사건이 그들의 달력이 되어 주었고, 그 달력은 1년을 365일로 나눈 인류 최초의 태양력이었어요. 우리가 오늘 쓰고 있는 1년 12달의 골격이 사실 4천 년 전 이 강의 흐름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강이 정확하니 사람도 모이게 마련입니다. 강 양쪽으로 좁고 긴 비옥한 띠가 만들어졌고, 그 띠를 따라 사람들이 도시를 지었습니다. 〈상이집트〉라 불린 강 상류의 도시들과 〈하이집트〉라 불린 삼각주의 도시들이 BC 3100년경 한 명의 왕 아래로 합쳐지면서, 우리가 '고대 이집트'라 부르는 한 나라가 시작됩니다. 그 첫 번째 왕의 이름이 나르메르, 또는 메네스였습니다. 그 사람이 머리에 왕관을 쓰는 장면이 새겨진 한 점의 돌이 있습니다. 〈나르메르 팔레트〉라 부르는 한 점이고, 우리는 그것을 제3부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나일 (6,650 km)
통일BC 3100 나르메르
달력1년 365일 태양력
이집트의 이름Kemet · 검은 땅
강이 정확하니 사람도 정확해졌어요. 그 정확함이 결국 한 나라가 되었고, 그 나라가 우리 달력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09
A · 03 · 메소포타미아
우르의 지구라트
BC 2100년경 우르의 지구라트 — 두 강 사이에서 신을 향해 쌓아 올린 거대한 계단 피라미드.
10
A · 03 · 메소포타미아 · BC 3500년경

진흙과 글자가 같이 태어난 곳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 두 강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고, 두 강이 흐르던 자리는 오늘의 이라크 일대지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강 옆에 도시를 짓고, 신전을 세우고, 글자를 만든 일이지요. 다만 두 곳은 한 가지가 매우 달랐어요. 이집트의 나일 강은 매년 같은 때에 일정하게 넘쳤지만, 메소포타미아의 두 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해는 강이 약해서 가뭄이 들었고, 어떤 해는 너무 세서 도시가 떠내려갔어요.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주 신을 부르고, 신에게 빌고, 신을 위한 큰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건물이 우리가 〈지구라트(Ziggurat)〉라 부르는 거대한 계단 피라미드입니다. 진흙 벽돌을 굽거나 햇볕에 말려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건축물이고, 가장 위에는 신전이 있었지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달리 지구라트는 무덤이 아니라 신을 위한 자리, 즉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잠시 머무는 계단'이라는 생각이 담긴 건축물이었습니다. 〈우르의 지구라트〉(BC 2100년경)가 가장 잘 보존된 한 채로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한 가지 더 있어요. 〈쐐기 문자(설형 문자)〉입니다. 진흙판 위에 갈대를 뾰족하게 깎은 펜으로 쐐기 모양을 콕콕 찍어 글자를 만들었어요. 인류 최초의 글자였고, 그 글자로 적힌 인류 최초의 문학이 바로 〈길가메시 서사시〉입니다. 한 영웅이 죽음을 두려워하다가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인데, 그 안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거의 똑같은 큰 홍수 장면도 들어 있어요. 4천 년 전 진흙판에 적힌 한 영웅의 이야기가 지금도 우리에게 닿아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두 강티그리스·유프라테스
대표 건축우르의 지구라트
최초의 문자쐐기 문자
최초의 문학길가메시 서사시
두 강이 변덕스러우니 사람들은 신을 자주 불렀어요. 그 부름이 거대한 계단 피라미드와 인류 최초의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11
A · 04 · 파라오
파라오의 어느 한낮
신왕국 시대 어느 한낮의 궁정 — 이중 왕관을 쓴 한 사람이 신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시대.
12
A · 04 · 파라오 · BC 2700~BC 1100

신과 왕이 같은 사람이었던 시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보통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파라오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신' 그 자체였어요.

고대 이집트의 약 3,000년이라는 긴 역사를 학자들은 보통 31개의 왕조와 30명 가까운 큰 파라오로 정리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 — 쿠푸, 람세스 2세, 투탄카멘, 클레오파트라 — 가 모두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지요. 다만 한 가지를 강조해 드리고 싶어요. 그들 모두가 자신을 살아 있는 신, 즉 매의 신 호루스의 화신으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파라오의 그림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그려졌어요. 키는 항상 가장 크게, 몸은 항상 가장 정면에서, 머리에는 두 이집트(상·하 이집트)를 함께 다스린다는 뜻의 〈이중 왕관〉을 씌웠지요.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집트 미술이 약 3,00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똑같은 자세, 똑같은 비율, 똑같은 그림 규칙이 30세대를 넘게 이어졌습니다. 다른 시대 같으면 50년만 지나도 그림이 바뀌는데, 왜 이집트는 그러지 않았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에게 미술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원'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그려서 멋있게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한번 정한 규칙대로 그려야 신이 알아보시고,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 그림에 머물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이 〈영원을 위한 미술〉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무덤, 그러니까 다음 페이지에서 만날 피라미드를 그렇게 크게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제3부에서 만날 〈투탄카멘의 황금 가면〉도 그래서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졌고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른 자리로 옮겨 가는 일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미술입니다.

기간BC 2700 ~ BC 30
파라오약 170명
이중 왕관상·하 이집트 통합
화신호루스 (매의 신)
이집트 미술이 3천 년을 거의 변하지 않은 이유 — 그들에게 미술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원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13
A · 05 ·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
기자의 세 피라미드 — BC 2580년경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를 가운데에 두고, 그의 아들 카프레와 손자 멘카우레의 피라미드가 차례로 서 있습니다.
14
A · 05 · 기자 · BC 2580

왜 그렇게 큰 무덤이 필요했을까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는 가로 230m, 높이 147m. 약 230만 개의 돌로 지어진 그 한 채가 4,50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피라미드 앞에 서면 한 가지 사실이 먼저 머릿속을 차지할 거예요. '이건 사람이 만든 게 맞나' 하는 생각이지요. 가장 큰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한 변이 230m이고 높이가 147m인데, 그 안에 들어간 석회암 블록은 평균 무게가 2.5톤이고 큰 것은 50톤짜리도 있어요. 그런 돌을 230만 개 쌓아 올린 건축물입니다. 19세기 말 파리의 에펠탑이 세워지기 전까지 4,300년 동안 인류가 만든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

'어떻게 만들었나'에 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릅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노예들이 채찍에 맞으며 만든 것이 아니에요. 1990년대 피라미드 옆에서 발견된 노동자 마을에서 그들이 매일 빵·맥주·양고기를 충분히 먹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둘째, 동시에 약 1만 명에서 2만 명이 일했고 한 명이 평생 일한 게 아니라 약 20년 정도가 걸린 큰 국가 사업이었어요. 피라미드는 사실 '왕의 무덤'인 동시에 '한 나라의 통합 의식'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한 가지입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무덤들이 거의 모두 도굴되었어요. 쿠푸의 대피라미드 안쪽도 BC 1000년경에 이미 비어 있었습니다. 다만 한 명의 파라오만은 운 좋게도 도굴을 피했지요. 18세에 죽은 어린 왕, 투탄카멘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황금 가면이 1922년에 발견되었고, 그것을 우리는 제3부에서 가까이 보게 됩니다.

대피라미드BC 2580 쿠푸 왕
크기230×230×147 m
약 230만 개
건설 기간약 20년
피라미드는 한 왕의 무덤이기도 했지만, 한 나라가 자기 모습을 처음으로 거대하게 그려 본 건축이기도 했습니다.
15
B
PART B · 4 PEOPLE · 이름이 남은 사람들

이름이 처음 남은 사람들

앞서 만난 라스코의 동굴 화가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어요. 그러나 이집트로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인류 최초로 자기 이름을 새긴 건축가, 종교를 통째로 바꾼 파라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가장 아름다운 왕비의 흉상이 지금도 우리에게 닿아 있습니다.

미술의 두 번째 페이지에는 이름이 적히기 시작합니다.
16 · CHAPTER OPENER
16
PART B · 네 사람

이름을 남긴 네 사람

한 사람씩 가까이 다가가 그 사람의 시간을 따라가 봅니다. 약 1,500년의 시간 차가 있는 네 사람이에요.

B1

임호테프 — 인류 최초로 이름이 남은 건축가

BC 27세기 · 사카라 계단식 피라미드 · P.18
B2

아크나톤 — 종교를 통째로 바꾼 파라오

BC 14세기 · 아마르나의 한 나라의 종교 혁명 · P.20
B3

네페르티티 — 그 곁의 왕비

BC 14세기 · 베를린에 잠든 한 점의 흉상 · P.22
B4

이름 없는 동굴 화가

BC 17,000 · 이름은 영원히 사라졌지만 그림은 남았다 · P.24
B5

한 가지 의문 — 진짜 자기가 그린 걸까

'예술가'라는 단어가 없던 시대의 미술 · P.26
17
B · 01 · 임호테프
임호테프 동상
임호테프 좌상 — 청동, BC 7~6세기 후대 제작.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기는 그보다 약 2,000년 앞선 BC 27세기입니다.
18
B · 01 · 임호테프 · BC 27세기

인류 최초로 이름이 남은 사람

미술의 시간이 시작되고 약 25,000년이 지난 BC 2700년경, 한 사람의 이름이 처음으로 글자에 적혀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임호테프(Imhotep)는 이집트 제3왕조 조세르 왕의 신하였습니다. 그가 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의사였고, 천문학자였으며,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인류 최초의 〈이름이 알려진 건축가〉였습니다.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그가 설계한 작품이에요. BC 2670년경에 완성된 이 한 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매끈한 사각뿔 피라미드가 아니라 6단의 계단처럼 쌓아 올린 형태였습니다. 그 후 100년쯤 지나서야 우리가 익히 아는 사각뿔형 피라미드 — 쿠푸의 대피라미드 — 가 만들어집니다. 즉 임호테프는 피라미드라는 형식 자체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라 해도 좋겠어요.

그가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죽고 나서의 일은 분명해요. 그가 죽고 약 2,000년이 지난 시점에 이집트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섬기기 시작합니다. 의술의 신, 지혜의 신, 그리고 글자의 신으로요. 그리스 사람들이 이집트로 들어온 후에는 그를 자기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같은 인물로 보았습니다. 사람이 신이 되는 일은 흔치 않은데, 임호테프는 그 드문 길을 걸었던 셈입니다.

옆 페이지의 청동 좌상은 임호테프가 죽고 약 2,200년 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그 얼굴이 그의 진짜 얼굴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를 신으로 섬기던 사람들이 자기네가 상상한 그의 모습으로 만든 한 점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 다른 종류의 진실이 됩니다. 한 사람의 이름이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그렇게 다음 세대의 손이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들어 준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어요.

시대BC 27세기 (제3왕조)
조세르
대표작사카라 계단식 피라미드
사후 신격화약 BC 600년경
한 사람의 이름이 살아 있다는 것은 다음 세대가 그를 다시 한 번 만들어 준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19
B · 02 · 아크나톤
아크나톤
아크나톤 거상 — BC 14세기, 아마르나에서 출토.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길게 늘어진 얼굴과 큰 입술이 그 시대의 가장 큰 미술 변혁을 보여 줍니다.
20
B · 02 · 아크나톤 · BC 1353~1336

한 사람이 한 나라의 종교를 바꿀 때

앞서 우리는 이집트 미술이 3,00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한 가지 큰 예외가 있습니다. 아크나톤이라는 한 파라오의 17년이지요.

아크나톤은 원래 〈아멘호테프 4세〉라는 이름으로 BC 1353년 무렵 즉위했습니다. 즉위 5년 차 되던 해, 그는 한 가지 놀라운 결정을 내려요. 이집트가 약 2,000년 동안 섬겨 온 수십 명의 신을 모두 폐지하고, 오직 한 신, 즉 태양 원반인 〈아텐(Aten)〉만을 섬기겠다고 선언한 거예요. 자기 이름도 그 신을 따라 〈아크나톤(Akhenaten, 아텐을 위해 헌신하는 자)〉으로 바꿉니다. 수도도 새로 옮겨, 사막 한복판에 〈아케타텐(Akhetaten, 오늘의 아마르나)〉이라는 새 도시를 5년 만에 짓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단일신을 처음으로 강제한 사례입니다.

이 종교 혁명은 당연히 미술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어요. 그 전까지 파라오는 항상 영원히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아크나톤 시기에는 갑자기 사람의 얼굴이 길게 늘어나고, 배가 부풀고, 입술이 크고, 손가락이 가늘게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아마르나 양식〉이라 부릅니다. 왜 갑자기 그렇게 그렸는지는 지금도 분명한 답이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아크나톤이 실제로 그런 외모였을 거라 보고, 어떤 학자는 그가 일부러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보이고 싶어 했을 거라 봅니다. 옆 페이지의 거상이 그 양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한 점이지요.

아크나톤이 죽고 나서의 일은 사실 더 슬픕니다. 그의 어린 아들 투탄카멘(원래 이름은 투탄카텐)이 9세에 즉위해 곧 모든 것을 되돌렸어요. 다시 옛 신들을 섬기고, 옛 수도로 돌아갔으며, 자기 이름까지도 옛 형식으로 바꿨습니다. 아마르나는 버려졌고, 후대 파라오들은 아크나톤의 이름을 모든 비석에서 지우려 했어요. 약 3,000년이 지난 19세기에야 사람들이 다시 그 사막의 도시를 발굴하면서 우리는 이 놀라운 17년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즉위BC 1353
종교 혁명아텐 단일신
새 수도아케타텐 (아마르나)
미술 양식아마르나 양식
3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이집트 미술이 단 17년 동안 가장 이상한 모양으로 흘렀어요. 한 사람의 결정이 그렇게 컸습니다.
21
B · 03 · 네페르티티
네페르티티 흉상
네페르티티 흉상 — BC 1340년경, 조각가 투트모세의 작업실에서 출토. 베를린 신박물관 소장. 가장 잘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한 얼굴.
22
B · 03 · 네페르티티 · BC 14세기

베를린에 잠든 한 얼굴

네페르티티(Nefertiti)는 아크나톤의 왕비였습니다. 이름의 뜻은 '아름다운 여자가 왔다'. 정말 그랬는지 한번 옆 페이지의 한 점을 보아 주세요.

네페르티티는 아크나톤의 종교 혁명에서 단순한 왕비가 아니었습니다. 아마르나에서 출토된 부조와 그림에서 그녀는 종종 남편과 동등한 크기로 그려져 있고, 어떤 부조에서는 적국의 왕을 칠 듯이 두 손으로 곤봉을 든 모습으로도 그려집니다. 그 시대 다른 왕비와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그림들이에요.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사실상 공동 통치자였을 거라는 의견이 점점 더 우세합니다. 어떤 연구자는 아크나톤이 죽고 나서 잠시 〈네페르네페르아텐〉이라는 이름의 파라오가 약 2년간 통치했는데, 그 사람이 사실 네페르티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녀의 이 아름다운 흉상은 1912년 12월 6일, 독일의 고고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가 아마르나에서 한 조각가의 작업실 자리를 발굴하다가 발견했습니다. 그 조각가의 이름이 〈투트모세〉라는 사실까지 작업실에 남은 다른 흔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약 3,400년 전에 한 조각가가 한 왕비를 모델로 삼아 깎은 한 점의 회반죽 흉상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단순한 인물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손이 다른 한 사람을 정성껏 깎아 본 시간이 거기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점이지요.

이 흉상은 지금 독일 베를린의 신박물관(Neues Museum)에 있습니다. 이집트 정부는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환을 요청하고 있지만 독일은 아직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한 점의 미술 작품이 원래 만들어진 자리로부터 어디까지 멀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가지 사례이기도 합니다. 베를린에서 카이로까지의 거리는 약 3,200km. 하지만 약 3,400년의 시간 차에 비하면 그 거리는 의외로 가까운 편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어요.

시기BC 14세기
왕비아크나톤의 부인
발견1912 보르하르트
소장베를린 신박물관
한 조각가가 한 왕비를 정성껏 깎아 본 한 시간이, 3,400년의 거리를 건너 우리 눈앞에 그대로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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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04 · 이름 없는
알타미라 동굴
알타미라 동굴 천장 — 스페인 칸타브리아, BC 14,000년경. 누가 그렸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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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04 · 이름 없는 동굴 화가 · BC 17,000~14,000

사라진 이름들을 위해

앞 세 사람의 이름은 글자가 만들어진 후 우리에게 남았어요. 그러나 라스코를 그린 사람, 알타미라를 그린 사람,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한 가지 사실을 짚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인류는 약 3만 년 동안 그림을 그려 왔는데, 그중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있는 화가는 사실 BC 3000년 이후의 약 5,000년뿐입니다. 그 전 25,000년의 그림은 모두 익명입니다. 누가 라스코를 그렸는지, 누가 알타미라의 천장에 들소를 그렸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어요.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단서가 있습니다. 라스코나 알타미라 같은 동굴 안에는 가끔 사람의 손바닥 자국이 함께 남아 있어요. 화가가 자기 손을 벽에 대고 입에 머금은 안료를 후 불어서 만든 음각의 손도장입니다. 그 손도장들을 자세히 분석한 2013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그 손의 약 75%가 여자의 손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동굴 화가는 사냥하는 남자'라는 이미지가 사실은 거꾸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에요. 동굴 안에서 횃불 옆에 앉아 짐승을 그린 사람들의 다수는 어쩌면 여자였을지 모릅니다.

이 익명의 화가들에게도 그래서 이 부에 한 자리를 드리고 싶었어요. 이름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그림을 덜 위대하게 만들지는 않지요. 오히려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그림만 남았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들의 그림을 더 깊은 곳까지 데려다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옆 페이지의 알타미라 동굴 천장은 1879년 스페인 칸타브리아 지방에서 한 어린 소녀, 마리아 사우투올라가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마르셀리노가 발굴 작업을 하던 중 여덟 살짜리 딸이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외쳤다고 해요. "아빠, 황소들이 있어요!" 그 외침이 미술사의 또 한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라스코BC 17,000
알타미라BC 14,000
발견1879 마리아 사우투올라
손도장 분석약 75%가 여성의 손
"아빠, 황소들이 있어요!" — 한 어린 소녀의 외침 한마디가 1만 4천 년 전의 그림 한 점을 다시 우리 앞에 데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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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05 · 한 가지 의문
임호테프
한 가지 단서 — 우리가 임호테프의 '작품'이라 부르는 사카라 피라미드도 사실 그 한 사람이 직접 깎은 게 아니라, 그가 설계한 도면을 따라 수천 명이 함께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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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05 · 한 가지 의문

'예술가'가 없던 시대의 미술

우리는 미술사를 흔히 한 사람의 천재가 한 작품을 만든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그런데 이 첫 호의 시대에는 사실 '예술가'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어요.

현대 한국어로 '예술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자유로운 창작자가 그려지지요. 그런데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그림과 조각은 거의 다 〈공방〉이라는 단체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한 명의 거장이 도면이나 모델을 정하면 수십 명의 도제와 일꾼들이 그것을 함께 깎고 칠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임호테프가 사카라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사실 "임호테프가 도면을 정했고 그 도면을 따라 수천 명이 만들었다"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 사람들이 그림을 그저 단체 작업의 결과물로만 본 것은 아닙니다. 앞 페이지의 〈네페르티티 흉상〉이 발견된 자리에는 〈투트모세의 작업실〉이라는 이름까지 또렷이 남아 있었어요. 한 사람의 이름이 어떤 작품의 자리에 새겨져 있었다는 뜻이지요. 또 사카라의 한 무덤에서는 BC 2300년경 〈센메우〉라는 한 화가가 자기 이름을 자기가 그린 벽화 옆에 작게 새겨 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예술가'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자기 손이 한 일을 자기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한 사람들은 그 시대에도 분명히 있었던 거예요.

이 한 가지 사실이 이 잡지의 다음 호로 가는 작은 다리가 됩니다. 우리는 곧 그리스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페이디아스라는 한 조각가가 자기 이름을 자기 작품에 정식으로 새겨 넣게 되거든요. '예술가'라는 자리가 처음으로 시작되는 그 한 자리이지요. 그러나 그 이야기는 다음 호의 일입니다. 이번 호의 마지막 두 부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시대의 가장 유명한 다섯 점의 작품과, 그 시대 사람들의 작은 일상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시대 직업장인 · 도제 · 거장
조직왕실 공방
최초의 서명센메우 BC 2300경
다음 단계그리스 페이디아스
'예술가'라는 단어는 없었어요. 그러나 자기 손이 한 일을 자기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한 사람은 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27
C
PART C · 5 WORKS · 그 손이 남긴 다섯 점

한 점씩 가까이

앞에서 우리는 시대와 사람을 만났어요. 이번 부에서는 한 점씩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라스코의 〈뛰는 소〉, 이집트의 첫 임금이 새겨진 〈나르메르 팔레트〉, 18세에 죽은 어린 왕의 황금 가면,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군기〉, 그리고 한 무덤 벽에 그려진 〈한 사냥꾼의 한낮〉. 다섯 점 모두 박물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진짜 작품들입니다.

한 점을 천천히, 가까이.
28 · CHAPTER OPENER
28
PART C · 다섯 점

그 손이 남긴 다섯 점

시대순으로 가장 오래된 한 점부터 차례로 만나 봅니다. 약 15,000년의 시차가 다섯 점 안에 들어가 있어요.

C1

라스코의 〈뛰는 소〉

BC 17,000 · 라스코 동굴 · P.30
C2

〈나르메르 팔레트〉

BC 3100 · 이집트 통일의 첫 그림 · 카이로 박물관 · P.32
C3

투탄카멘의 황금 가면

BC 1323 · 18세에 죽은 어린 왕 · 카이로 박물관 · P.34
C4

〈우르 군기〉

BC 2500 · 한 도시의 평화와 전쟁 · 대영박물관 · P.36
C5

〈네바문의 사냥〉

BC 1350 · 한 무덤 벽에 남은 한낮 · 대영박물관 · P.38
29
C · 01 · 라스코
라스코 동굴 그림
라스코 〈황소들의 방〉 — BC 17,000년경. 황토와 망간을 입에 머금어 후 분 자국이 1만 7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30
C · 01 · 라스코 〈뛰는 소〉 · BC 17,000

움직이는 한 마리의 소

라스코 동굴에서 가장 큰 그림이 〈황소들의 방〉이에요. 그 안에 한 마리, 길이 5.2미터의 거대한 황소가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고 뛰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그림을 처음 가까이서 보면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1만 7천 년 전의 그림인데도, 황소가 정말 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지요. 다리는 앞뒤로 벌어졌고, 등은 약간 굽었으며, 머리는 뒤를 돌아보고 있어요. 어떤 학자는 이 그림이 〈움직임을 표현한 인류 최초의 그림〉일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5.2미터의 길이도 놀라운 일이고요.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진 횃불의 빛으로는 동굴 벽 전체를 한 번에 보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그 큰 비례를 그렇게 정확히 잡았는지 지금도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림에 사용된 안료는 두 가지뿐입니다. 〈황토(red ochre)〉와 〈검은 망간 산화물〉. 두 안료를 작은 가죽 주머니 안에 침과 함께 담아 입에 머금은 다음, 가는 갈대 대롱으로 후 불어 벽에 흩뿌리는 방식이 사용되었어요. 이 방식을 〈에어브러시 기법〉이라 부르는데, 원리상 1900년대의 분무기와 거의 같습니다. 1만 7천 년 전 사람들이 이미 안료를 분사해서 칠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정말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라스코 동굴 안쪽 깊숙한 자리, 일반 사람이 잘 들어가지 않는 좁은 통로 안쪽에 그림이 가장 많이 그려져 있어요. 사람이 살았던 동굴 입구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어둡고 좁은 자리를 골라 그렸다는 뜻이지요.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그림들이 일종의 〈종교 의식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봅니다. 즉, 첫 그림은 처음부터 단순한 사냥 기록이 아니라, 어떤 신성한 행위였을 거라는 거예요. 미술의 시작이 이미 종교의 시작과 함께 있었다는 한 가지 단서이기도 합니다.

시기약 BC 17,000
크기5.2 m (큰 황소)
안료황토 + 망간
기법에어브러시 분사
미술의 시작은 사냥 기록이 아니라 어쩌면 '신성한 행위'였을 거예요. 첫 그림이 동굴의 가장 깊은 자리에 그려진 까닭입니다.
31
C · 02 · 나르메르
나르메르 팔레트
〈나르메르 팔레트〉 — BC 3100년경, 회녹색 점판암, 64cm.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한 나라의 시작이 한 돌 안에 들어 있습니다.
32
C · 02 · 나르메르 팔레트 · BC 3100

한 나라가 시작되는 한 돌

한 나라의 역사가 한 점의 돌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하면 좀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나르메르 팔레트〉가 정말 그런 한 점입니다.

먼저 '팔레트'가 무엇인지부터 짚어야겠어요. 이집트 사람들은 화장을 위한 안료를 갈 때 쓰는 작은 회녹색 돌판을 〈팔레트〉라 불렀습니다. 일상의 화장 도구였지요. 그런데 BC 3100년경 어느 시점에, 한 신전에 봉헌하기 위해 매우 큰 의식용 팔레트가 만들어졌어요. 64cm 크기의 그 한 점이 1898년 이집트 남부 히에라콘폴리스의 신전 자리에서 발견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나르메르 팔레트〉라 부릅니다.

이 팔레트의 양면에는 한 명의 왕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 면에서는 그가 〈상이집트의 흰 왕관〉을 쓰고 한 손으로 적의 머리를 잡아 곤봉으로 치려는 모습이고, 다른 면에서는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쓰고 적군의 시신을 보러 행진하는 모습이지요. 이 두 장면이 한 돌 위에 함께 새겨졌다는 것은, 한 명의 왕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처음으로 통일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왕이 바로 나르메르(또는 메네스)라 불리는 인물이고, 우리가 '고대 이집트 제1왕조'라 부르는 한 나라의 첫 왕이었어요.

이 팔레트가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 위에 새겨진 사람의 모습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집트 그림의 〈얼굴은 옆으로, 어깨는 정면으로, 다리는 다시 옆으로〉 그리는 양식의 아주 초기 사례라는 점이에요. 이 양식은 그 후 약 3,00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이집트 미술의 표준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한 점의 팔레트가 한 나라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한 미술 양식의 시작이기도 한 셈이지요. 1898년에 이 한 점을 발굴한 두 학자, 제임스 퀴벨과 프레더릭 그린이 그 사실을 그날 어디까지 짐작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 그 한 돌을 통해 4,500년 전의 어느 첫 날을 엿보고 있는 셈입니다.

발견1898 히에라콘폴리스
크기64 cm 점판암
나르메르 (제1왕조)
소장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한 돌 위의 두 면이 한 나라의 시작을 동시에 선언했어요. 미술이 정치의 시작과 같은 자리에 있던 시대입니다.
33
C · 03 · 투탄카멘
투탄카멘 황금 가면
투탄카멘의 장례 가면 — BC 1323년, 11kg의 순금에 라피스 라줄리·홍옥수·터키석.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34
C · 03 · 투탄카멘 황금 가면 · BC 1323

18세에 죽은 어린 왕

투탄카멘은 별로 중요한 파라오가 아니었어요. 그가 통치한 기간은 단 9년이고, 죽었을 때 나이는 18세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행운이 그를 가장 유명한 파라오로 만들었지요.

그 행운은, 그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약 3,000년 동안 거의 모든 파라오의 무덤이 도굴된 가운데, 투탄카멘의 무덤 KV62는 〈왕들의 계곡〉의 다른 큰 무덤 아래에 우연히 묻혀 있어서 도둑들의 눈을 피했어요. 1922년 11월 4일,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그 무덤의 입구를 찾아냈습니다. 11월 26일 카터가 작은 구멍을 뚫고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같이 간 후원자 카나번 경이 "뭐가 보이나요?" 하고 물었다고 해요. 카터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짧게 답했습니다. "보입니다. 멋진 것들이요(Yes, wonderful things)."

그 안에는 약 5,400점의 부장품이 거의 손대지 않은 채 들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한 점이 옆 페이지의 황금 장례 가면이지요. 무게는 11kg, 순금에 청금석(라피스 라줄리)·홍옥수·터키석·흑요석을 박아 만들었습니다. 어린 왕의 얼굴을 거의 살아 있을 때의 모습으로 옮겨 놓은 것 같은데, 그가 죽은 지 3,300년이 지난 지금도 표정이 또렷이 살아 있어요. 죽음을 끝이 아니라 다른 자리로의 이동으로 본 사람들의 마음이 이 한 점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카터의 발굴은 이집트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어요. 다만 이 발굴 직후부터 〈투탄카멘의 저주〉라는 이상한 이야기가 신문 1면을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나번 경이 1923년 4월 모기에게 물려 갑자기 사망했고, 그 후 약 20명의 발굴 관련자가 차례로 죽었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카터 본인은 그로부터 17년을 더 살았으니, 〈저주〉라는 건 1920년대 신문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 더 가까웠지만, 이 어린 왕의 신비함은 그 후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투탄카멘 (9년 통치)
사망BC 1323 · 18세
발견1922.11.04 하워드 카터
소재·무게순금 11 kg
"보입니다. 멋진 것들이요." — 카터의 그 한마디가 이집트학의 100년을 시작했습니다.
35
C · 04 · 우르
우르 군기
〈우르 군기〉 — BC 2600~2400, 메소포타미아 우르의 왕실 무덤. 가로 50cm, 나무 상자 양면에 청금석·홍옥수·자개로 모자이크. 대영박물관.
36
C · 04 · 우르 군기 · BC 2500

한 도시의 두 얼굴

한 가지 사물의 양면에 같은 도시의 〈전쟁〉과 〈평화〉가 함께 새겨져 있어요. 4,5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한 모자이크 상자입니다.

'군기(軍旗)'라는 우리말은 사실 정확하지 않아요. 영어 이름도 〈Standard〉인데, 이 사물이 진짜 깃발이었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1928년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가 메소포타미아 우르의 한 왕실 무덤에서 이 한 점을 발견했을 때, 그는 깃발 위에 들고 다니는 의식용 패널이라 추측했어요. 그래서 〈Standard of Ur〉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다만 후대 학자들은 이것이 사실 한 점의 작은 나무 상자, 즉 악기의 소리통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이름이 어떻든 이 한 점이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까닭은, 한 사물의 두 면에 한 도시의 두 얼굴이 또렷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 면에는 〈평화의 면〉이라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위쪽에는 왕이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가운데에는 가축을 끌고 오는 사람들이, 아래쪽에는 항아리에 곡식을 담아 운반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지요. 다른 한 면에는 〈전쟁의 면〉이 있습니다. 위쪽에는 왕이 전차를 타고, 가운데에는 보병이 적을 진압하고, 아래쪽에는 적군의 전차들이 부서지고 있어요. 한 도시의 평화와 전쟁이 같은 한 사람의 손으로 그려진 한 점입니다.

이 한 점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유는 사용된 재료입니다. 청금석(라피스 라줄리)은 그 시대 메소포타미아에는 나지 않는 광물이었어요. 그것은 약 3,000km 떨어진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채굴되어 천천히 메소포타미아까지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즉 이 작은 상자 한 점에는 그 시대 사람들이 이미 〈장거리 무역〉을 하고 있었다는 한 가지 사실이 함께 들어가 있는 셈이에요. 한 도시의 두 얼굴, 그리고 그 도시 너머까지 이어진 손길. 한 점의 작은 상자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 그렇게 깊습니다.

발견1928 레너드 울리
출토우르 왕실 무덤
청금석 산지아프가니스탄 (3,000 km)
소장대영박물관
한 사물의 두 면에 한 도시의 평화와 전쟁이 같이 새겨졌어요. 어느 시대든 사람의 풍경은 두 면이 같이 있는 것 같아요.
37
C · 05 · 네바문
네바문의 사냥
〈네바문의 사냥〉 — BC 1350년경, 테베의 한 무덤 벽. 회반죽 위에 안료. 대영박물관.
38
C · 05 · 네바문의 사냥 · BC 1350

한 무덤 에 그려진 한낮

앞 네 점은 모두 왕이나 영웅의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 한 점은 조금 다릅니다. 평범한 한 사람의 한낮이 한 무덤 벽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이 그림 속 사람의 이름은 〈네바문(Nebamun)〉입니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 BC 1350년경 테베의 곡식 창고를 관리하던 한 관리였어요. 왕도 아니고 신관도 아닌, 그저 중간 정도의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자기 무덤을 짓고, 그 안의 한 벽에 자신이 살아 있을 때의 가장 좋아하던 한 시간을 그려 두었어요. 늪지에서 새를 사냥하는 한낮의 풍경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네바문이 가운데에서 부메랑을 들고 새를 잡으려 하고 있고, 옆에는 그의 아내가 정장을 입고 향수병을 들고 서 있어요. 두 사람 사이에는 어린 딸이 아빠의 다리를 잡고 있지요. 새들은 놀라 사방으로 날아가고,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동시에 두 마리의 새를 잡고 있어요. 늪지의 갈대와 연꽃, 물에 사는 작은 물고기들도 모두 그려져 있어요. 왕의 영원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장 좋아한 한낮을 위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사실이 천천히 떠오릅니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고대 미술이 거의 다 무덤이나 신전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 말이지요. 즉, 살아 있을 때 본 그림이 아니라 죽음을 위해 만든 그림이 우리에게 더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그 죽음을 위한 그림 안에, 사실은 살아 있을 때의 가장 행복한 한 시간이 가장 정성껏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가끔 마음을 흔듭니다. 네바문이 자기 무덤 벽에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것은 결국 한 평범한 한낮이었어요. 가족과 함께 늪지에서 새를 잡던, 그 그저 그런 한 시간이지요. 어쩌면 그것이 미술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한 가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기BC 1350 (신왕국)
인물네바문 (곡식 창고 관리)
출토테베 무덤 벽화
소장대영박물관
한 사람이 자기 무덤 벽에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것은, 가족과 함께 새를 잡던 그저 그런 한낮이었습니다.
39
D
PART D · 5 STORIES · 그들의 한 끼, 한 곡, 한 벌

본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다섯 가지

마지막 부에서는 그 시대의 일상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무엇을 먹었나, 어떤 그림 도구를 썼나, 어떤 옷을 입었나, 어떤 노래를 들었나, 그리고 한 가지 미스터리. 미술사 책이 본문 사이로 가끔 흘려 두던 잡학들이지요.

한 시대의 일상 안에 미술의 또 한 페이지가 있어요.
40 · CHAPTER OPENER
40
PART D · 다섯 가지 잡학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

박물관에 가면 작품 옆에 작게 적혀 있는 안내문 같은 것들. 한 가지씩 천천히 읽어 보아 주세요.

D1

그들은 무엇을 먹었나

이집트의 빵 40종 · 맥주 한 잔 · P.42
D2

그림 도구

황토 한 덩이 · 갈대 펜 한 자루 · P.44
D3

옷과 장신구

청금석 목걸이 · 콜 화장 · 흑요석 가발 · P.46
D4

그 시대의 음악

하프와 뼈피리 · 메소포타미아 리라 · P.48
D5

미라가 알려 준 한 끼

21세기 화학 분석이 본 4천 년 전의 식단 · P.50
41
D · 01 · 식탁
고대 이집트 식탁
고대 이집트의 식탁 한 자리 — 약 40종의 빵, 〈마시는 빵〉이라 불린 맥주 한 잔, 그리고 무화과·대추·올리브.
42
D · 01 · 그들은 무엇을 먹었나

40종과 맥주 한 잔

한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친근한 길은,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풍요롭게 먹었어요. 무덤 벽화와 출토된 음식 잔재로 학자들은 그 시대 식단을 꽤 자세히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음식은 빵이었어요. 이집트인은 약 40가지의 빵을 구분해서 만들었습니다. 둥근 빵, 길쭉한 빵, 도넛 모양의 빵, 꿀과 무화과를 넣은 단빵, 검은깨를 뿌린 빵, 두꺼운 빵, 얇은 빵... 빵의 종류마다 이름이 따로 있었고, 각각 의례와 일상에서 쓰임이 달랐지요.

두 번째로 중요한 음식이 맥주였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거품 가득한 황금색 맥주가 아니라, 죽처럼 진하고 약간 거친 음료였습니다. 보리를 살짝 발효시킨 빵을 다시 물에 풀어서 다시 발효시킨 결과물이었어요. 알코올 도수는 약 5~6%로 지금의 맥주와 비슷했지만, 영양가가 훨씬 높아서 〈마시는 빵〉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하루에 약 4리터의 맥주를 일당의 일부로 받았어요. 피라미드를 쌓던 사람들이 매일 받았던 영양의 한 축이 바로 이 맥주였지요.

이집트 식탁의 또 다른 한 자리는 채소와 과일이었습니다. 양파·마늘·부추가 일상의 채소였고, 멜론·무화과·대추·석류·포도·올리브가 흔했어요. 고기는 귀했는데, 부유층은 양·소·오리·거위를 먹었고, 평민은 주로 닭이나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이 〈치즈〉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에요. 2018년 사카라 무덤에서 출토된 약 BC 1300년경의 단지에서 인류 가장 오래된 치즈 잔재가 발견되었습니다.

약 40종
맥주5~6% '마시는 빵'
노동자 일당맥주 4 L
최고 치즈BC 1300 사카라
한 시대의 식탁이 그 시대를 가장 친근하게 알려 줍니다. 빵 40종을 구분한 사람들이 우리 4천 년 전의 이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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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2 · 그림 도구
고대 그림 도구
고대의 그림 도구들 — 황토 한 덩이, 갈대 펜 한 자루, 파피루스 두루마리, 그리고 인류 최초의 합성 안료 〈이집트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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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2 · 그림 도구

황토 한 덩이, 갈대 펜 한 자루

3만 년 동안 사람의 손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손에 도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안료는 〈황토(red ochre)〉였어요. 산화철이 많이 들어 있는 흙이고, 색은 짙은 갈색에서 진한 빨강까지 다양합니다. 자연에 워낙 흔해서 인류는 약 30만 년 전부터 이미 이것을 채집해 사용했어요. 두 번째로 흔한 것이 〈검은색 망간 산화물〉이고, 〈노란색 황토〉, 〈백토(white clay)〉가 그 다음입니다. 이 네 가지가 라스코·알타미라 동굴 그림의 거의 모든 색을 만들었어요. 색은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 안에서 1만 7천 년 전 사람들은 짐승의 그림자와 빛을 표현해 냈습니다.

이집트로 들어오면 안료의 종류가 갑자기 늘어납니다. 〈청금석〉을 갈아 만든 진한 파란색, 〈말라카이트〉를 갈아 만든 초록색, 〈홍옥수〉의 진한 빨강, 그리고 인류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합성 안료 〈이집트 블루〉까지. 이 〈이집트 블루(Egyptian blue)〉는 약 BC 2500년경 발명된 것으로, 모래·구리·재를 섞어 약 850°C에서 구워 만든 합성 청색 안료입니다. 인류 최초의 화학 안료였고, 그 후 약 4,000년 동안 지중해 일대에서 사용되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도구도 있었지요. 동굴에서는 입에 머금은 안료를 갈대 대롱으로 후 분 〈에어브러시〉가 사용되었고, 작은 부분은 손가락이나 동물 털 묶음으로 칠했어요. 이집트에서는 갈대를 뾰족하게 깎은 〈갈대 펜〉이 발달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펜〉의 시조입니다. 종이는 아직 없었고, 대신 늪지에서 자라는 갈대를 가로세로로 엮어 만든 〈파피루스〉가 널리 쓰였어요. 우리말 '종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paper'가 사실 이 'papyrus'에서 온 단어이지요.

최초 안료황토 (BC 30만 년)
합성 안료이집트 블루 (BC 2500)
필기구갈대 펜
종이파피루스
우리가 손에 잡는 펜과 종이의 시조가 이집트의 갈대였어요. 'paper'라는 단어 자체가 그 갈대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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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3 · 옷·장신구
고대 이집트 옷과 장신구
고대 이집트인의 옷과 장신구 — 흰 아마 천 샨티, 청금석·홍옥수의 우셰크 목걸이, 연꽃 모양 알라바스터 항아리에 담긴 콜 화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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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3 · 옷과 장신구

청금석 목걸이와 콜 화장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옷차림과 화장은 의외로 정교하고 화려했어요. 우리가 무덤 벽화에서 보는 그 정장이 그저 의례용이 아니었다는 뜻이지요.

가장 기본적인 옷은 〈샨티(shenti)〉라는 흰색 아마 천으로 만든 둘레 치마였어요. 남녀 모두 이것을 둘렀고, 더운 날씨에 맞게 매우 얇은 천을 사용했습니다. 부유층의 여성은 그 위에 〈칼라시리스(kalasiris)〉라는 한 벌의 긴 흰 드레스를 입었고, 신관과 귀족은 그 위에 표범 가죽이나 황금 장식이 달린 망토를 걸치기도 했지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복잡한 머리장식과 진한 화장의 클레오파트라〉는 사실 매우 후대(BC 1세기)의 모습이고, 약 1,500년 전의 신왕국 시대도 비슷하게 정교한 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신구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어요. 부유층은 〈우셰크(wesekh)〉라 부르는 넓은 옷깃 형태의 목걸이를 했는데, 청금석·홍옥수·황금 구슬을 일렬로 꿰어 만든 화려한 한 점이었습니다. 손가락에는 황금 반지, 손목에는 황금 팔찌, 발목에는 발찌까지 했어요. 이 장신구들은 단순한 멋이 아니라 죽음 후에도 영혼을 보호한다는 〈호부(amulet)〉의 의미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디자인의 장신구가 산 사람의 몸에서도 무덤 안의 미라에서도 똑같이 발견됩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화장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들은 〈콜(kohl)〉이라는 검은 화장재를 눈가에 두껍게 그렸습니다. 연꽃 모양의 작은 알라바스터 항아리에 보관했고, 가는 막대로 발랐지요. 콜은 단순한 멋이 아니라 강한 햇빛을 가리는 실용 장치이기도 했어요. 야구 선수들이 햇빛을 가리려고 눈 밑에 검은 줄을 그리는 것과 같은 원리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콜에는 항균 성분이 있어서 사막의 모래 먼지가 일으키는 결막염을 예방하는 효과까지 있었다고 해요. 4천 년 전 사람들이 이미 〈자외선 차단·항균 화장품〉을 만들고 있었던 셈입니다.

기본 의복샨티 · 칼라시리스
목걸이우셰크 (호부)
화장콜 (자외선 차단·항균)
청금석아프가니스탄 수입
4천 년 전 사람들이 이미 자외선 차단과 항균 효과가 있는 화장품을 매일 발랐어요. 우리가 쓰는 화장품의 시조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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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4 · 음악
고대 이집트 음악가들
고대 이집트의 잔치 한 자리 — 하프, 류트, 더블 플루트, 탬버린의 4악기와 가수가 함께한 어느 저녁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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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4 · 그 시대의 음악

하프, 뼈피리, 그리고 리라

우리는 그 시대의 그림과 조각은 보지만, 그 시대의 음악은 들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한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악기로 알려진 것이 〈슬로베니아 디브제 바베 동굴〉에서 출토된 약 BC 4만 년경의 〈뼈피리〉입니다. 곰의 대퇴골에 네 개의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이고, 인류 최초의 악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이 한 점이 함의하는 바는 큽니다. 인류는 그림보다 음악을 먼저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어쩌면 라스코 동굴 안에서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의 옆자리에는 이미 누군가가 뼈피리로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로 들어오면 악기의 종류가 풍부해집니다. 이집트 무덤 벽화에 자주 그려진 악기는 네 가지예요. 〈하프〉(다양한 크기), 〈류트〉(목이 긴 발현 악기), 〈더블 플루트〉(갈대 두 자루를 묶은 피리), 〈탬버린〉. 보통 세 명에서 다섯 명이 한 악단을 이루어 연주했고, 가수가 옆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비슷했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은 〈리라(lyre)〉라는 악기가 그 지역에서 특히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BC 2500년경의 우르 왕실 무덤에서 출토된 〈황소 머리 리라〉가 가장 잘 보존된 한 점이지요.

그러면 그들이 어떤 〈음〉을 연주했을까요. 이 부분은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영역입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악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발견이 1950년대 시리아 우가리트에서 있었습니다. BC 1400년경의 진흙판에 한 곡의 악보가 쐐기 문자로 적혀 있었던 거예요. 〈후리안 찬가 H6(Hurrian Hymn)〉이라 불리는 이 악보는 인류 최초의 정식 악보로 인정됩니다. 학자들은 이 악보를 해독해 약 1분 분량의 가락을 복원했고, 유튜브에서 〈Hurrian Hymn〉으로 검색하시면 그 한 곡을 들으실 수 있어요. 3,400년 전의 음악이 우리 귀에 들어오는 한 순간입니다.

최고 악기뼈피리 BC 40,000
이집트 4악기하프·류트·플루트·탬버린
메소포타미아황소 머리 리라
최초 악보후리안 찬가 BC 1400
3,400년 전의 한 곡이 진흙판 위에서 살아남아, 지금 우리 귀에 다시 들립니다. 이 잡지의 가장 신비한 페이지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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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5 · 미라 분석
현대 박물관 보존실의 미라 분석
현대 박물관 보존실의 어느 밤 — 4천 년 전 미라가 21세기의 CT 스캔 위에 놓여 자기 평생을 다시 들려주는 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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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5 · 21세기 화학이 본 4천 년 전

미라가 알려 준 한 끼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병에 걸렸고, 몇 살에 죽었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답은 의외로 한 가지에 있습니다 — 미라.

미라는 단순한 박물관 전시품이 아니에요. 21세기의 화학·의학 기술로 분석하면 한 미라가 그 사람의 평생을 거의 그대로 보여 줍니다. 〈안정 동위원소 분석〉으로 머리카락 한 가닥에서 그 사람이 평생 어떤 음식을 주로 먹었는지 알 수 있고, 〈CT 스캔〉으로 뼈와 장기 상태를 확인해 어떤 병에 걸렸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어요. 2014년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의 미라 컬렉션 약 100구를 한꺼번에 분석한 한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먼저 그들의 식단입니다. 평민의 미라에서는 보리·밀·콩·생선의 흔적이 주로 나왔고, 부유층의 미라에서는 추가로 양고기·소고기·꿀·기름·와인의 흔적이 검출되었어요. 평민과 부유층의 식단 차이는 우리 짐작보다 컸지만, 그렇다고 평민이 영양 부족 상태였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약 BC 1300년경 이집트 평민의 평균 키는 남자 167cm, 여자 156cm로, 19세기 산업혁명기 영국 노동자보다 큰 편이었어요.

그들의 병도 흥미롭습니다. 약 30%의 미라에서 〈동맥경화〉가 발견되었고, 일부 미라에서는 〈관절염〉, 〈충치〉, 그리고 사하라 사막의 모래 먼지로 인한 〈만성 폐 질환〉이 확인되었어요. 평균 수명은 약 35세 정도였지만, 신생아 사망률을 빼면 약 5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머릿속의 〈고대인은 일찍 죽었다〉는 이미지는 사실 절반만 맞고, 절반은 신화였던 셈이에요. 한 사람의 평생이 한 미라의 화학 분석으로 4천 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다시 도착하고 있습니다.

방법안정 동위원소 + CT
평민 식단보리·콩·생선 중심
평균 키남 167cm · 여 156cm
평균 수명약 50세 (성인 기준)
한 미라 한 구가 그 사람의 평생을 그대로 들려줍니다. 21세기의 화학이 4천 년 전과 우리를 다시 한번 잇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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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X · 시대 연표

이 호의 30,000년

로제타 스톤

BC 30,000 인류 최초의 동굴 그림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동굴)

BC 17,000 라스코 동굴 그림

BC 14,000 알타미라 동굴 천장

BC 5500~3500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형성 시작

BC 3500 메소포타미아 쐐기 문자 등장

BC 3100 나르메르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 — 〈나르메르 팔레트〉

BC 2670 임호테프 — 사카라 계단식 피라미드

BC 2580 쿠푸의 대피라미드

BC 2500 〈우르 군기〉

BC 1800 함무라비 법전 (메소포타미아)

BC 1353 아크나톤의 종교 혁명 시작

BC 1340 네페르티티 흉상 (조각가 투트모세 작업실)

BC 1323 투탄카멘 사망 — 황금 가면

BC 196 로제타 스톤 새겨짐 (옆 사진)

1799 나폴레옹 군대가 로제타 스톤 발견

1822 샹폴리옹이 이집트 상형 문자 해독

1879 마리아 사우투올라가 알타미라 동굴 발견

1898 〈나르메르 팔레트〉 발견

1922 카터가 투탄카멘 무덤 발견

1940 라비다와 친구들이 라스코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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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X · 핵심 일곱 점

이 호의 일곱 점

함무라비 법전

1. 라스코 〈뛰는 소〉 BC 17,000 — 동굴 미술의 최고봉. 움직임을 표현한 첫 그림.

2. 알타미라 동굴 천장 BC 14,000 — 1879년 8세 소녀가 발견한 들소 그림.

3. 〈나르메르 팔레트〉 BC 3100 — 한 나라의 통일과 한 미술 양식의 시작.

4. 사카라 계단식 피라미드 BC 2670 — 임호테프의 인류 최초의 거대 석조 건축.

5. 〈우르 군기〉 BC 2500 — 메소포타미아의 평화와 전쟁이 한 점에.

6. 〈함무라비 법전〉 BC 1750 — 옆 사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시작.

7. 투탄카멘 황금 가면 BC 1323 — 도굴되지 않은 단 한 명의 파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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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PHON · 닫는 글

첫 호를 다 따라간 후

EDITORIAL

Editor — Luna Whale
Curator — 손창범 (루나웨일 아트랩 원장)
2026년 5월 1쇄

이 호의 4부

A 시대 풍경 5장면 · B 이름이 남은 사람들 5장면 · C 다섯 점 · D 잡학 5가지 · 부록(연표·일곱 점). 30,000년의 첫 미술 이야기.

주요 참고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950 · 게리 슈완트 〈고대 이집트의 모든 것〉 · 대영박물관·루브르·카이로 이집트 박물관·베를린 신박물관 디지털 컬렉션

이미지 출처

대부분의 작품 사진은 Wikimedia Commons의 퍼블릭 도메인 자료를 사용했습니다. 시대 풍경과 잡지식 일러스트는 미드저니 v7로 재현했습니다.

NEXT ISSUE · Vol.02 예고
그리스의 황금

BC 5세기 아테네. 페이디아스가 자기 이름을 자기 작품에 새기고, 〈밀로의 비너스〉와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만들어지는 시간으로 갑니다. '예술가'라는 자리가 처음 시작되는 자리.

LUNA WHALE · ART HISTORY VOL.01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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