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미술사 Luna Art History · 2026
Vol
02
No.2 · 20부작
파르테논 신전
SPECIAL ISSUE · 인류 고전의 4세기

그리스의 황금

BC 8세기 호메로스의 노래에서 BC 4세기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까지 — 한 도시가 인류의 〈고전〉을 빚은 400년.

LUNA WHALE · ART HISTORY 54 PAGES · 4 PARTS
EDITOR'S LETTER · 여는 글

안녕하세요. 〈루나 미술사〉의 두 번째 호를 펼쳐 주셔서 반갑습니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동굴의 어둠과 이집트의 사막을 지나왔습니다. 그곳에서 미술은 두려움과 바람의 한 가지 형태였어요. 이번 호에서 우리는 한 작은 도시로 들어갑니다. 아테네. 그 도시가 인류 미술사에 처음으로 〈한 사람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한 곳입니다.

이집트 미술이 3,000년을 거의 변하지 않았다면, 그리스 미술은 단 400년 사이에 거의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 냈습니다. BC 8세기에는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노래했고, BC 5세기에는 페이디아스가 파르테논 신전 안에 12미터의 아테나 여신상을 깎았으며, BC 4세기에는 프락시텔레스가 처음으로 여신을 알몸으로 조각했지요. 그 사이에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비극이 태어났고, 아고라에서는 시민이라는 새 단어가 자라났습니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한 도시 〈아테네〉, 그리고 그 도시가 길러낸 네 명의 조각가 — 페이디아스, 미론, 폴리클레이토스, 프락시텔레스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기 작품에 이름을 새겨 넣기 시작한 사람들이지요. 우리가 〈예술가〉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그 단어의 시조가 그 네 사람 안에 있습니다.

제1부는 시대의 풍경입니다. 아크로폴리스의 황금 시간, 새벽의 신전, 시민이 모이던 아고라, 비극이 태어난 디오니소스 극장, 그리고 밤의 심포지움. 제2부는 사람입니다. 페이디아스를 비롯한 네 조각가의 손. 제3부는 그들이 남긴 다섯 작품 — 파르테논 신전,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라오콘 군상, 그리고 도리포로스. 제4부는 그 시대의 일상으로 돌아가,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도구를 썼는지를 봅니다.

그리스 미술의 작품 대부분은 사실 우리가 보는 그것이 〈진짜〉가 아닙니다. 거의 모두가 로마 시대의 대리석 사본이지요. 그러나 그 사본 안에서도 BC 5세기 어느 청동 원본의 비례가 살아 있고, 그것을 깎은 한 사람의 손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한 시대의 작품이 다음 시대로 옮겨질 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지를 — 이번 호는 그 자리에서 같이 들여다봅니다.

그럼 천천히 넘겨 주세요.

2026년 6월 · 루나웨일 미술사 편집실
EDITOR — Luna Whale
02
CONTENTS · 목차

한 호의 네 부

A

시대의 풍경

아크로폴리스에서 디오니소스 극장과 심포지움까지, 한 도시가 빚은 다섯 풍경.

P.04 – P.15
B

이름이 새겨진 사람들

페이디아스, 미론, 폴리클레이토스, 프락시텔레스 — 인류 미술사에 처음 이름이 남은 네 조각가.

P.16 – P.27
C

남긴 다섯 점

파르테논 신전,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라오콘 군상, 도리포로스. 각 한 점씩 가까이.

P.28 – P.39
D

그들의 한 끼, 한 곡, 한 벌

심포지움의 식탁, 도예 작업실, 옷과 향수, 리라와 아울로스, 그리고 그리스 알파벳.

P.40 – P.51
03
A
PART A · 5 STORIES · 시대의 풍경

아테네의 황금 시간

한 도시 안에서 인류 고전의 거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의 대리석, 아고라의 시민, 디오니소스 극장의 비극, 심포지움의 대화. BC 5세기의 어느 한 도시 안에서 일어난 일을 다섯 풍경으로 따라가 봅니다.

한 도시가 인류의 〈고전〉을 빚은 한 세기.
04 · CHAPTER OPENER
04
PART A · 다섯 풍경

아테네의 다섯 풍경

한 도시의 한 세기를 다섯 자리로 나누어 보여 드립니다.

A1

아크로폴리스의 황금 시간

BC 447년경 ·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 P.06
A2

새벽의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완공 직후의 한 새벽 · P.08
A3

아고라 — 시민의 광장

소크라테스가 걷던 자리 · P.10
A4

디오니소스 극장

비극이 태어난 1만 4천 석의 한 자리 · P.12
A5

밤의 심포지움

한 잔의 와인이 한 권의 책이 되던 시간 · P.14
05
A · 01 · 아크로폴리스
황금 시간의 아크로폴리스
BC 5세기 후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 페리클레스가 도시 한가운데에 거대한 흰 대리석 신전들을 세우던 그 시대.
06
A · 01 · BC 447년경 ·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대리석의 도시가 세워지던 한 세기

BC 447년 봄, 한 명의 정치가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큰 결정을 받아 냅니다. 아크로폴리스 위에 거대한 신전을 새로 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치가의 이름이 페리클레스(Pericles)입니다. BC 461년부터 약 30년 동안 아테네를 이끈 사람이고, 그가 통치하던 시기를 우리는 흔히 〈페리클레스의 시대〉 또는 〈아테네의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이 한 세기 동안 한 도시 안에서 인류 미술사의 거의 모든 분야가 새로 만들어졌어요. 조각, 건축, 도자기, 연극, 철학,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까지요.

페리클레스가 BC 447년에 시작한 사업이 〈아크로폴리스 재건〉이었습니다. 그 30년 전인 BC 480년,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네에 쳐들어와 도시를 불태웠고, 아크로폴리스 위의 옛 신전들도 모두 파괴되었어요. 페리클레스는 그 폐허를 그대로 30년쯤 두었다가, 마침내 BC 447년에 거대한 새 신전들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그 중심에 〈파르테논〉이 있었습니다. 15년 만에 완공된 이 신전이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완벽한 직사각형 건축으로 평가됩니다.

페리클레스는 이 사업을 한 사람의 조각가에게 총괄로 맡겼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페이디아스(Pheidias)입니다. 우리가 제2부에서 가까이 만나게 될 그 사람입니다. 한 정치가의 결정과 한 조각가의 손이 만나, 한 도시의 풍경이 결정되었던 한 세기 —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미술〉이라는 단어의 거의 모든 알갱이가 그 한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기BC 447 ~ BC 432
정치가페리클레스
조각 총괄페이디아스
건축이크티노스 · 칼리크라테스
한 정치가의 결정과 한 조각가의 손이 한 세기의 풍경을 빚어낸 — 그 만남이 인류 고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07
A · 02 · 새벽
새벽의 아크로폴리스
BC 432년 어느 새벽 — 15년의 공사가 끝나고 처음으로 햇살이 새 파르테논 신전 위로 떠오르던 그날.
08
A · 02 · BC 432 · 파르테논 완공

15년 만에 완성된 흰 대리석

BC 432년 봄, 15년의 공사가 마침내 끝났습니다. 그날 아침, 새 파르테논 위로 처음 떠오른 햇살을 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한번 상상해 보아 주세요.

파르테논은 단순히 큰 신전이 아니었습니다. 가로 약 70미터, 세로 31미터, 높이 14미터의 흰 펜텔리쿠스 산 대리석 건물 — 그 크기 자체도 거대했지만, 건축적으로 더 놀라운 점은 이 건물이 거의 완벽한 비례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로와 세로의 비율, 기둥의 높이와 두께, 처마의 깊이 — 모든 곳에 〈9 : 4〉라는 같은 비율이 반복적으로 들어 있어요. 마치 음악의 화음처럼 한 비율이 건물 전체에 울리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건물에는 사실 직선이 거의 없어요. 멀리서 보면 완벽한 직사각형으로 보이는데, 자세히 측정하면 모든 선이 미세하게 휘어 있습니다. 가운데 기둥은 양 끝 기둥보다 약간 두껍고, 모든 기둥이 안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어 있으며, 건물 바닥 자체가 약간 볼록하게 솟아 있어요.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눈이 멀리서 볼 때 직선이 휘어 보인다〉는 사실을 보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것을 〈엔타시스(entasis)〉라 불렀습니다.

한 건물을 짓기 위해 사람의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한 번 더 계산한 그 마음 — 그 마음이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한 시대의 가장 깊은 곳에 있습니다. 똑바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똑바르지 않다는 진실. 그러나 그 휘어짐 덕분에 똑바로 보인다는 더 깊은 진실. 한 신전이 그 두 가지를 같이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크기69.5 × 30.9 × 13.7 m
대리석펜텔리쿠스 산
기둥도리아식 46개
비례9 : 4
똑바로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휘게 그어 둔 그 선들이,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한 시대의 가장 깊은 곳에 있습니다.
09
A · 03 · 아고라
아테네 아고라
BC 5세기 아테네 아고라 — 시민이 모여 정치를 토론하고, 상인이 물건을 팔고, 한 철학자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던 광장.
10
A · 03 · 아고라 · 시민의 광장

소크라테스가 걷던 자리

아고라(Agora)는 그리스어로 단순히 〈광장〉을 뜻하지만, 그 광장에서 일어난 일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아테네의 아고라는 아크로폴리스 북쪽,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자리에 가면 무너진 신전 기둥들과 길게 펼쳐진 회랑(스토아)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BC 5세기의 어느 한낮을 상상해 보면 이런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 한쪽에서는 상인이 올리브 기름을 팔고, 다른 쪽에서는 신탁을 들으러 온 사람이 신전 앞에 서 있고, 또 한쪽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다음 전쟁을 토론하고 있고, 그 사이를 한 맨발의 노인이 지나가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지요.

그 노인의 이름이 소크라테스(Socrates)였습니다. 인류 철학사가 시작되는 자리는 거대한 도서관이나 깊은 숲이 아니라, 한 도시의 시끄러운 광장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어요. 그는 그저 아고라를 매일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용기란 무엇입니까?" "당신이 정말로 안다고 하는 그것을, 정말로 알고 있습니까?" 그 질문들이 그의 제자 플라톤의 손으로 적혀 우리에게까지 닿았습니다.

아고라가 단순한 광장이 아닌 까닭은 그 자리가 〈민주정치〉가 처음 작동하던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BC 508년 클레이스테네스가 시작한 아테네의 직접 민주정에서, 시민 누구나 아고라 한쪽의 〈프닉스 언덕〉에 모여 직접 투표할 수 있었어요. 약 6,000명이 한 번에 모여 한 가지 안건을 두고 표를 던지던 그 자리가 인류가 만든 첫 번째 민주주의의 풍경입니다. 한 광장에서 정치와 철학과 미술이 같이 자란 그 한 도시의 한 시기를, 우리는 〈고전 그리스〉라 부릅니다.

위치아크로폴리스 북쪽
철학자소크라테스 · 플라톤
민주정BC 508 클레이스테네스
시민약 30,000명
철학과 민주주의가 처음 작동한 자리는 도서관이 아니라 한 시끄러운 광장이었습니다.
11
A · 04 · 극장
디오니소스 극장
아크로폴리스 남쪽 사면에 자리한 디오니소스 극장 — 1만 4천 석의 반원형 객석. 인류 비극이 처음 태어난 자리.
12
A · 04 · 디오니소스 극장 · 비극의 탄생

한 도시 전체가 관객이 되던 날

매년 봄 아테네에서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열렸습니다. 5일 동안 한 도시 전체가 극장에 모여 비극과 희극을 함께 보던 그 한 주.

디오니소스 극장은 아크로폴리스 남쪽 사면에 자연 지형을 깎아 만든 반원형 야외 극장입니다. 약 1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어요. 당시 아테네 시민이 약 3만 명 정도였으니, 〈한 도시의 거의 절반〉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규모였던 셈입니다. 매년 봄 〈디오니시아〉라 부른 5일짜리 축제 동안 새 비극과 희극 작품이 처음 무대에 올랐고, 마지막 날에는 그해 가장 좋은 작품을 시민들이 직접 투표로 뽑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우리가 오늘 〈서양 문학〉이라 부르는 거의 모든 것의 출발점이 이 극장에 있습니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 그리스 비극의 세 대가 모두가 이 극장의 무대 위에서 자기 작품을 처음 선보였어요.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메데이아〉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들이 모두 BC 5세기의 어느 봄, 이 극장의 한 자리에서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약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작품들이 거의 그대로 무대에 올라간다는 사실이, 가끔은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비극이 한 도시의 큰 행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 그리스 사람들이 비극을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봐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한 영웅이 운명에 무너지는 모습을 한 도시 전체가 같이 지켜보고, 그 자리에서 한 번 같이 슬퍼한 뒤 집으로 돌아간다 — 그 5일의 축제가 한 도시를 묶는 마음의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한 영화를 같이 보는 마음의 시조가 어쩌면 그 시대의 디오니소스 극장에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규모1만 4천 석
축제디오니시아 (5일)
3대 비극아이스킬로스 · 소포클레스 · 에우리피데스
희극아리스토파네스
한 도시 전체가 한 자리에 모여 한 비극을 함께 보던 5일 — 영화관의 시조가 그 자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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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05 · 심포지움
심포지움 저녁
BC 5세기 아테네의 어느 저녁 — 비스듬히 누워 와인 한 잔과 음악과 대화로 밤을 보내던 〈심포지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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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05 · 심포지움 · 밤의 대화

한 잔의 와인이 한 권의 책이 되던 시간

심포지움(Symposium)은 그리스어로 〈함께 마시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오늘 〈학술 대회〉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 symposium의 시조가 그 단어이지요.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움은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일정한 형식이 있었어요. 보통 7~12명의 남자가 한 집의 〈안드론(andron)〉이라 부른 식당에 모여, 비스듬히 누운 침상(클리네)에 자리를 잡고 시작했어요. 식사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세 번에 걸쳐 와인이 돌았습니다. 첫 번째는 신을 위한 헌주, 두 번째는 죽은 영웅들을 위한 헌주, 세 번째는 살아 있는 친구들을 위한 헌주였지요.

와인이 돌기 시작하면 한 사람씩 차례로 〈오늘 밤의 주제〉에 관해 자기 생각을 풀어냈습니다. 음악가가 옆에서 아울로스(이중관 피리)나 키타라(작은 하프)를 연주했고, 가끔은 댄서가 들어와 짧은 춤을 췄어요. 그러나 핵심은 어디까지나 〈대화〉였습니다.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대화편 중 하나가 〈심포지움〉이라는 제목인데, 그 책은 BC 416년 어느 밤 아테네의 한 심포지움에서 일곱 사람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한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한 잔의 와인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었던 그 시대의 분위기 — 그것이 그리스 미술사의 한 기둥이기도 합니다. 도자기에 그려진 심포지움 풍경, 가구로 사용된 호화로운 침상, 와인을 따라 마시던 〈크라테르(혼합 그릇)〉와 〈킬릭스(평평한 잔)〉의 정교한 도예,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다음 날 깎기 시작한 조각상 — 그 모든 것이 한 줄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 도시의 밤이 한 시대의 미술을 빚어낸 자리이기도 한 거지요.

참여7~12명 남자
자세비스듬히 누운 침상
악기아울로스 · 키타라
유명한 책플라톤 〈심포지움〉 BC 380경
한 잔의 와인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었던 시대 — 한 도시의 밤이 한 시대의 미술을 빚어낸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15
B
PART B · 5 PEOPLE · 이름이 새겨진 사람들

이름이 새겨진 네 사람

지난 호 마지막에 한 가지 단서를 남겼습니다. 〈예술가〉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자기 이름을 자기 손이 한 일에 새기고 싶어 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그 사람들의 이름이 처음으로 또렷하게 남기 시작하는 자리가 바로 BC 5세기의 그리스입니다. 페이디아스, 미론, 폴리클레이토스, 프락시텔레스 — 인류 미술사가 처음으로 〈한 조각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네 사람.

한 시대의 미술이 처음 〈한 사람의 이름〉을 갖기 시작한 자리.
16 · CHAPTER OPENER
16
PART B · 다섯 사람

조각가 네 사람

한 사람씩 가까이 다가가 그 손이 만든 작품 한 점씩을 함께 보겠습니다.

B1

페이디아스 — 신상을 깎은 사람

BC 480 ~ BC 430 · 파르테논 아테나 · P.18
B2

페리클레스 — 의뢰한 정치가

BC 495 ~ BC 429 · 한 시대를 발주한 사람 · P.20
B3

미론 — 동작을 처음 깎은 사람

BC 480 ~ BC 440 · 원반 던지는 사람 · P.22
B4

프락시텔레스 — 대리석을 부드럽게

BC 4세기 · 헤르메스 · 알몸의 비너스 · P.24
B5

한 가지 사실 — 거의 다 사본이다

청동 원본 vs 로마 시대 대리석 사본 · P.26
17
B · 01 · 페이디아스
페이디아스
페이디아스의 모습 — 후대의 상상으로 그려진 한 조각가. BC 5세기 그리스 조각의 거의 모든 출발점이 이 한 사람 안에 있습니다.
18
B · 01 · 페이디아스 · BC 480~BC 430

파르테논 안의 12미터 신상

페이디아스(Pheidias)는 인류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만든 작품은 사실 우리에게 직접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끼친 영향은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페이디아스는 BC 480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났습니다. 페리클레스의 어린 시절 친구였고, 페리클레스가 BC 447년 아크로폴리스 재건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가장 먼저 부른 사람이 페이디아스였어요. 페리클레스는 그를 단순한 조각가가 아니라 〈모든 사업의 총괄〉로 임명했습니다. 30년 동안의 거대한 건축·조각 사업을 한 사람이 지휘한 것입니다.

페이디아스가 직접 깎은 두 작품이 가장 유명합니다. 첫 번째가 파르테논 신전 안의 〈아테나 파르테노스〉 신상이었어요. 높이 12미터, 상아와 금으로 만든 거대한 신상이고, 신전 안 한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두 번째가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입니다. 높이 13미터, 역시 상아와 금으로 만든 작품이었고,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혔지요. 그러나 두 신상 모두 후대에 사라졌습니다. 아테나는 5세기경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그곳 화재로 소실되었고, 제우스는 5세기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 시대에 콘스탄티노플의 한 궁전에서 화재로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페이디아스를 알 수 있을까요. 첫째, 파르테논 신전에 직접 새겨진 부조 — 〈파르테논 프리즈〉입니다. 이 부조 일부가 19세기 초 영국 외교관 엘긴 경에 의해 영국으로 옮겨졌고, 지금 대영박물관의 〈엘긴 마블스〉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둘째, 후대 로마 시대에 페이디아스의 작품을 모방해 만든 작은 사본들입니다. 한 사람의 손이 직접 깎은 것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손의 흔적이 다른 손들로 옮겨져 우리에게 어렴풋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생몰BC 480 ~ BC 430
대표작아테나 파르테노스
7대 불가사의올림피아 제우스
남은 것파르테논 프리즈 부조
한 사람의 손이 직접 만든 것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그 손이 다른 손들에 옮겨져 우리에게 어렴풋이 닿아 있습니다.
19
B · 02 · 페리클레스
페리클레스 흉상
페리클레스 흉상 — 코린트식 투구를 쓴 모습으로 묘사된 정치가. 한 시대를 〈발주한〉 사람.
20
B · 02 · 페리클레스 · BC 495~BC 429

한 시대를 발주한 사람

미술사에는 작품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작품을 〈만들게 한〉 사람의 이름은 의외로 드뭅니다. 페리클레스가 그 드문 이름 중 하나입니다.

페리클레스는 BC 495년경 아테네의 명문가 알크마이오니다이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BC 461년 약 34세에 아테네 정치의 최고 자리에 오른 후, 3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한 도시를 이끌었어요. 그가 살았던 한 세기를 후대 사람들이 〈페리클레스의 시대〉라 부르게 된 것은, 그 한 사람의 결정이 한 도시의 모양을 거의 다 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페리클레스의 가장 큰 결정 중 하나가 BC 447년의 〈아크로폴리스 재건〉이었습니다. 사실 이 결정은 당시에도 큰 논란이 있었어요. 페르시아 전쟁 후 아테네가 주도한 〈델로스 동맹〉의 자금을, 페리클레스는 그 동맹 도시들의 동의 없이 가져와 아크로폴리스 공사에 썼던 것입니다. 동맹 도시들의 항의가 거세었지만, 페리클레스는 시민들 앞에서 한 가지 답을 내놓았다고 투키디데스가 적었습니다. "이 신전들이 다 세워지고 나면, 그 영광은 우리 도시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것이 될 것이다."

그 말이 단순한 자기 정당화였는지, 진심이었는지는 우리도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약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신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인류의 〈고전〉이라는 단어의 거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한 정치가의 결정이 그렇게 멀리까지 이어진 사례를 우리는 그 후로 자주 만나기 어렵습니다. 페리클레스는 BC 429년 아테네의 역병으로 사망했고, 그 직후부터 아테네는 천천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시대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발주한〉 시대는 의외로 길게 갑니다.

생몰BC 495 ~ BC 429
통치BC 461 ~ BC 429
대업아크로폴리스 재건 BC 447
사망아테네 역병
한 사람이 〈발주한〉 한 시대가, 그 한 사람의 시대보다 의외로 길게 갑니다.
21
B · 03 ·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Discobolus)〉 — BC 460년경 청동 원본은 사라졌고,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로마 시대 대리석 사본입니다.
22
B · 03 · 미론 · BC 480~BC 440

동작을 처음 깎은

미론(Myron)이 깎은 〈원반 던지는 사람〉은 인류 미술사에서 〈움직임〉을 처음으로 정지된 조각 안에 담은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미론은 페이디아스보다 약간 앞선 세대의 조각가였습니다. BC 480년경 태어나 BC 440년경 활동했고, 그 시기 그리스 조각의 가장 큰 변화 — 〈고졸기(Archaic) 양식에서 고전기(Classical) 양식으로의 전환〉의 한가운데에 있던 사람입니다.

고졸기의 그리스 조각은 이집트 조각의 영향을 받아, 거의 모두가 정면을 보고 한쪽 발을 살짝 내민 자세였습니다. 미소도 일정한 〈고졸기의 미소〉가 모든 얼굴에 같이 있었지요. 그런데 미론이 BC 460년경 만든 〈원반 던지는 사람〉은 그 모든 규칙을 한 번에 깼습니다. 온몸이 비틀려 회전하는 그 한 순간 — 원반을 막 던지기 직전 0.1초의 그 자세를 청동에 깎아 둔 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의 어떤 조각도 그렇게 격렬한 동작을 표현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사실을 짚어야 합니다. 미론이 깎은 진짜 〈원반 던지는 사람〉은 청동으로 만든 작품이었어요. 그 청동 원본은 후대에 사라졌습니다 — 아마 중세 어느 시기에 녹여서 다른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원반 던지는 사람〉은 모두 로마 시대(BC 1세기 ~ AD 2세기)에 그 청동 원본을 보고 만든 대리석 사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론의 손을 직접 만나는 것은 사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우리가 만나는 것은 〈로마 시대의 한 조각가가 미론의 청동 원본을 보고 옮긴 대리석 한 점〉입니다. 그러나 그 사본 안에서도 BC 460년경 한 사람이 처음으로 깎은 0.1초의 회전이 어렴풋이 살아 있습니다.

생몰BC 480 ~ BC 440
대표작원반 던지는 사람 BC 460경
원본청동 (소실)
남은 사본로마 시대 대리석 다수
정지된 돌 안에 〈움직임〉을 처음으로 담은 한 손이,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회전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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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04 · 프락시텔레스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
프락시텔레스의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 — BC 4세기, 올림피아 박물관. 그가 직접 깎은 것으로 추정되는 드문 원본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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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04 · 프락시텔레스 · BC 4세기

대리석을 부드럽게 다룬 사람

프락시텔레스(Praxiteles)는 BC 4세기 아테네에서 활동한 조각가입니다. 페이디아스 시대의 〈엄숙한 신상〉과 다른 한 가지를 처음 시도한 사람이지요 — 〈인간적인 신〉.

BC 5세기의 그리스 조각이 추구한 것은 〈완벽한 비례와 위엄〉이었습니다. 페이디아스의 신상들은 거대했고, 거리감이 있었으며, 인간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어떤 것이었어요. 그런데 BC 4세기에 들어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신을 인간처럼 따뜻하게 그리고 싶어 한 마음 — 그 마음이 프락시텔레스의 손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BC 4세기 후반에 만든 〈크니도스의 비너스(Aphrodite of Knidos)〉입니다. 인류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여신을 〈완전히 알몸으로〉 깎은 작품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그리스 조각에서 알몸은 남자 영웅에게만 허용되었어요. 여신은 항상 천을 두르고 있었지요. 프락시텔레스가 이 관습을 깬 것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처음 의뢰한 도시 코스(Kos)는 너무 파격적이라며 그 작품을 거절했고, 옆 도시 크니도스(Knidos)가 받아들여 자기네 신전 한가운데에 모셨습니다. 이후 약 1,000년 동안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가장 자주 모방된 작품 중 하나가 되었어요.

다만 그 〈크니도스의 비너스〉도 원본은 사라졌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후대의 대리석 사본 50점 이상. 그러나 한 점, 그가 직접 깎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한 개 남아 있어요. 옆 페이지의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입니다. 1877년 올림피아의 한 신전 자리에서 발굴되었고, 지금 올림피아 박물관에 있습니다. 학자들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한 점이 어쩌면 〈프락시텔레스의 손〉을 우리가 직접 만나는 유일한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시기BC 4세기
대표작크니도스의 비너스
원본 추정헤르메스와 디오니소스
발굴1877 올림피아
그가 직접 깎은 손이 어쩌면 한 점에 남아 있습니다 — 약 2,400년이 지난 그 한 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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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05 · 사본
도리포로스
폴리클레이토스의 〈도리포로스(창을 든 사람)〉 — BC 440년경 청동 원본은 사라졌고, 그림은 로마 시대의 대리석 사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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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05 · 한 가지 사실

우리가 보는 그것은 거의 다 사본이다

박물관에서 〈BC 5세기 그리스 조각〉이라 적힌 작품 앞에 설 때, 우리가 사실 보고 있는 것은 거의 항상 〈로마 시대의 대리석 사본〉입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의 거의 모든 〈진짜 원본〉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BC 5세기 그리스에서 청동은 가장 정교한 조각을 깎을 수 있는 재료였고, 페이디아스·미론·폴리클레이토스 모두 청동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청동에는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었습니다. 녹여서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중세에 들어 유럽 전역에서 청동 조각상들이 무기·교회 종·동전을 만들기 위해 녹여졌고, 그 결과 그리스 청동 원본의 99% 이상이 사라졌습니다. 살아남은 그리스 청동 조각은 전 세계에서 약 30점밖에 안 됩니다. 그것도 대부분 바다에 가라앉아 천 년을 잠들어 있다가 19~20세기에 발견된 것들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그 수많은 〈그리스 조각〉은 무엇일까요. 거의 다 BC 1세기부터 AD 2세기까지의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대리석 사본〉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을 매우 사랑했어요. 부유한 로마 귀족들은 자기 별장에 그리스 조각을 두고 싶어 했고, 그래서 〈사본 산업〉이라 부를 만한 큰 시장이 생겼습니다. 그리스 본토와 로마 사이를 오가는 배가 그리스 청동 원본을 모델로 삼아 대리석 사본을 만든 것이지요.

이 사실이 우리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작품 대부분은 〈한 사람의 손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손을 거쳐 우리에게 도착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점이 그 작품들의 가치를 깎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청동에서 대리석으로 — 그 모든 옮겨짐 안에서도 살아남은 어떤 비례, 어떤 자세, 어떤 표정이 우리에게 닿았다는 사실이 더 깊은 종류의 진실입니다. 옆 페이지의 〈도리포로스〉도 그 한 가지 사례. 폴리클레이토스가 BC 440년경 깎은 청동 원본은 사라졌고, 우리가 보는 것은 약 500년 후 로마의 한 조각가가 그 청동을 보고 옮긴 대리석 한 점입니다.

원본거의 다 청동 (소실)
살아남은 청동전 세계 약 30점
박물관 작품거의 다 로마 사본
사본 시기BC 1세기 ~ AD 2세기
한 손이 직접 만든 것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손에서 다른 손들로 옮겨진 비례와 자세는 여전히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습니다.
27
C
PART C · 5 WORKS · 남긴 다섯 점

한 점씩 가까이

앞에서 우리는 시대와 사람을 만났어요. 이번 부에서는 한 점씩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파르테논 신전,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라오콘 군상, 그리고 도리포로스. 다섯 점 모두 박물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진짜 작품들 — 비록 거의 다 로마 시대 사본이지만, 그 안에서도 BC 5세기 한 사람의 손이 어렴풋이 살아 있습니다.

한 점을 천천히, 가까이.
28 · CHAPTER OPENER
28
PART C · 다섯 점

남긴 다섯 점

시대순으로 가장 오래된 한 점부터 차례로 만나 봅니다.

C1

파르테논 신전

BC 432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 P.30
C2

밀로의 비너스

BC 130경 · 루브르 박물관 · P.32
C3

사모트라케의 니케

BC 200경 · 루브르 박물관 · P.34
C4

라오콘 군상

BC 1세기 · 바티칸 박물관 · P.36
C5

붉은 그림 도자기

BC 5세기 아테네의 일상 · P.38
29
C · 01 · 파르테논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 BC 447 ~ BC 432 건설. 펜텔리쿠스 산 흰 대리석.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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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01 · 파르테논 · BC 432

한 신전이 한 도시의 중심이 될 때

파르테논(Parthenon)은 그리스어로 〈처녀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처녀(parthenos)〉가 곧 도시의 수호 여신 아테나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지요.

이 신전이 BC 432년에 완공된 후 약 900년 동안 그 자리에 거의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AD 5세기경 동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 교회로 개조되었고, 1456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아테네를 점령한 후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어요. 그러다 결정적 사건이 1687년에 일어납니다. 베네치아 군대가 아테네를 공격하면서 한 발의 포탄이 파르테논에 떨어졌고, 당시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오스만의 화약이 폭발했습니다. 약 2,100년을 거의 그대로 서 있던 신전이 그 한순간에 절반이 무너졌어요.

그 후 약 100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다가, 19세기 초에 또 한 가지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1801년 영국의 외교관 엘긴 경(Lord Elgin)이 오스만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파르테논의 외벽 부조와 박공 조각의 약 절반을 영국으로 가져갔어요.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라 부르는 이 조각들이 지금도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은 아직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한 신전의 부조가 한 박물관과 다른 도시 사이에 갈라져 있는 그 풍경은, 오늘까지 이어지는 미술사의 한 가지 풀리지 않은 매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전 자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지금도 매일 약 2만 명이 그 신전 앞으로 올라가 그 흰 대리석 기둥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지요. 한 정치가의 발주와 한 조각가의 손이 만나 빚어낸 그 한 채의 신전이, 약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도시의 중심에 그대로 서 있다는 사실 —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완공BC 432
건축가이크티노스 · 칼리크라테스
조각페이디아스 총괄
유산1987 유네스코
한 신전이 한 도시의 중심에 2,500년 동안 그대로 서 있다는 사실 —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깊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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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02 ·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Aphrodite of Milos) — BC 130~100년경 헬레니즘 후기. 대리석, 높이 203 cm.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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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02 · 밀로의 비너스 · BC 130경

두 팔이 사라진 한 여신

루브르 박물관의 가장 유명한 두 작품 —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그 중 한 작품에는 두 팔이 없습니다.

1820년 4월 8일, 그리스 에게해의 작은 섬 밀로스(Milos)에서 한 농부 요르고스 켄트로타스가 자기 밭을 갈다가 땅속에 묻혀 있던 한 점의 대리석 조각상을 발견합니다. 그날의 우연이 인류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열었어요. 곧 프랑스 외교관이 이 조각상을 사들였고, 1821년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해 지금까지 그곳에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BC 130~100년경의 헬레니즘 후기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누가 깎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단서가 작품에 직접 새겨져 있었어요. 발견 당시 받침대에 〈안티오케이아의 알렉산드로스의 아들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받침대는 이후 사라졌어요). 그러므로 조각가의 이름은 부분적으로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셈입니다.

가장 큰 의문은 한 가지 — 〈두 팔이 어디로 갔을까〉입니다. 이 작품이 어디서 어떤 자세로 서 있었는지에 관해 학자들 사이에 여러 가설이 있어요.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있었을 거라는 가설(트로이 전쟁의 〈파리스의 심판〉 장면), 두 손으로 거울을 보고 있었을 거라는 가설(자기 모습을 비춰 보는 비너스), 한 손은 옷자락을 잡고 있었을 거라는 가설 등이 있어요. 어느 가설이든, 우리는 지금 〈두 팔이 사라진〉 모습으로만 그녀를 만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 〈사라진 두 팔〉이 오히려 작품을 더 신비롭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 한 자세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보는 사람마다 다른 자세를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제작BC 130 ~ BC 100
발견1820 밀로스 섬
크기203 cm 대리석
소장루브르 박물관
사라진 두 팔이 오히려 작품을 더 신비롭게 만들었어요 — 정해지지 않은 자세가 보는 사람마다 다른 상상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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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03 · 니케
사모트라케의 니케
사모트라케의 니케 — BC 200~190년경 헬레니즘 후기. 대리석, 높이 244 cm. 루브르 박물관 다루 계단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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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03 · 사모트라케의 니케 · BC 200경

바람을 맞고 서 있는 한 점

루브르 박물관의 다루(Daru) 계단을 올라가면 그 한가운데에 머리도 두 팔도 없는 한 여신상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서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이름이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hrace)〉입니다. 〈니케〉는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의 여신〉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사모트라케〉는 그녀가 발견된 그리스 북부의 작은 섬 이름이에요. 1863년 프랑스 영사이자 고고학자였던 샤를 샹푸아조(Charles Champoiseau)가 사모트라케 섬의 〈위대한 신들의 성역〉이라는 이름의 신전 자리에서 이 조각상의 조각들을 발굴했습니다.

이 작품이 미술사적으로 특별한 이유는 한 가지 — 〈움직임의 표현〉입니다. 여신의 옷자락이 거센 바닷바람에 날리고, 한쪽 다리는 앞으로 한 발 내디뎠으며, 거대한 두 날개는 이제 막 펼쳐진 듯이 뒤로 향해 있어요. 그녀가 서 있는 받침대는 사실 〈배의 뱃머리〉 모양으로 깎여 있습니다. 승리의 여신이 막 한 척의 군선 위에 내려와 도시에 승리를 알리는 그 한순간 — 그 0.5초의 동작을 약 2,200년 전 한 조각가가 거대한 대리석에 멈춰 둔 것입니다.

이 작품은 헬레니즘 시대 후기의 가장 뛰어난 조각으로 평가됩니다. BC 5세기 페이디아스의 시대가 〈완벽한 비례와 위엄〉을 추구했다면, 헬레니즘 시대(BC 4~1세기)는 〈격렬한 동작과 감정〉을 추구했어요.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그 후기 양식의 정점에 있는 한 작품입니다. 한 시대가 자기 미감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줄의 답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제작BC 200 ~ BC 190
발견1863 사모트라케 섬
크기244 cm 대리석
소장루브르 다루 계단
막 내려온 승리의 여신의 0.5초 — 그 한순간이 약 2,200년 전 한 조각가의 손에 멈춰져 우리에게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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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04 · 라오콘
라오콘 군상
라오콘 군상(Laocoön and His Sons) — BC 1세기 헬레니즘 후기. 대리석. 바티칸 박물관. 한 사제와 두 아들이 거대한 뱀에 휘감기는 한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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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04 · 라오콘 군상 · BC 1세기

고통의 최고점을 깎은 한 점

한 사제와 그의 두 아들이 거대한 두 마리 뱀에 휘감겨 죽어 가는 그 한순간 — 미술사가 깎아 낸 가장 격렬한 장면 중 하나가 그 한 점에 있습니다.

라오콘은 트로이 전쟁의 한 인물입니다. 그리스인들이 만들어 트로이 성문 앞에 두고 간 거대한 목마를 두고, 그가 한 가지 경고를 합니다. "저 목마를 도시 안으로 들이지 마시오. 그 안에 그리스 군대가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경고는 무시되었고, 그 직후 바다에서 거대한 두 마리 뱀이 나와 그와 그의 두 아들을 덮쳐 죽이고 말아요. 트로이 사람들은 이를 두고 〈신들이 라오콘을 벌한 것〉이라 해석했고, 결국 목마를 성 안으로 들였습니다. 그 다음 일은 우리가 모두 아는 그것입니다.

이 군상은 1506년 1월 14일,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의 한 포도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날 미켈란젤로가 직접 발굴 현장에 달려가 이 작품을 봤다고 전해져요. 그는 이 작품을 보고 자기 평생의 조각 양식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격렬한 인체들, 〈최후의 심판〉의 비틀린 자세들 — 그 모든 것이 이 라오콘 군상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것이었어요. 한 작품의 발견이 한 시대의 미술 양식을 새로 만든 드문 사례입니다.

이 작품의 정확한 제작 시기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어떤 학자는 BC 2세기 그리스 본토에서 만들어진 원본이라 보고, 어떤 학자는 BC 1세기 또는 AD 1세기 로마에서 그리스 양식으로 만든 작품이라 봅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이 작품 안에 〈고통의 최고점에 다다른 인간의 몸〉이 그렇게 정교하게 깎여 있다는 사실 — 그리고 그 한 점이 약 1,500년을 땅속에 묻혀 있다가 1506년 한 포도밭에서 다시 햇빛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시기BC 2~AD 1세기
발견1506 로마
영향미켈란젤로 양식
소장바티칸 박물관
한 작품의 발견이 한 시대의 미술 양식을 새로 만든 드문 사례 — 그날 발굴 현장에 달려간 한 사람이 미켈란젤로였습니다.
37
C · 05 · 도자기
붉은 그림 도자기
붉은 그림 도자기(Red-figure pottery) — BC 530년경 아테네에서 시작된 도자 화법. 검은 바탕에 인물이 붉은 점토색으로 떠오르는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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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05 · 붉은 그림 도자기 · BC 5세기

한 도시의 일상이 도자기에

한 시대의 큰 조각상은 사라지고 사본만 남았지만, 그 시대의 작은 도자기는 의외로 많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안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BC 6세기 후반 아테네에서 한 가지 새로운 도자기 화법이 탄생합니다. 〈붉은 그림(red-figure)〉이라 부르는 양식이에요. 그 전까지는 〈검은 그림(black-figure)〉이 일반적이었어요. 검은 그림은 붉은 점토 도자기 위에 검은 안료로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BC 530년경 한 무명의 도예가가 이 방식을 뒤집었습니다. 도자기 전체를 검게 칠하고, 인물 부분만 붉은 점토색으로 남겨 두는 방식 — 그것이 〈붉은 그림〉이었어요.

이 방식의 큰 장점은 〈자세한 표현〉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검은 그림에서는 인물의 세부를 흰 선으로 긁어 표현해야 했지만, 붉은 그림에서는 인물의 얼굴이나 옷주름을 가는 검은 붓 선으로 직접 그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BC 5세기의 그리스 도자기들은 거의 모두 이 붉은 그림 양식이고, 그 안에 그려진 장면들이 매우 정교합니다. 영웅 신화, 신들의 잔치, 시민의 결혼식, 심포지움의 풍경, 도예 작업실의 모습,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글을 배우는 장면 — 그 시대 아테네의 일상이 거의 모두 도자기에 그려져 있어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도예가들이 자기 작품에 자기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에우프로니오스가 그렸다(Euphronios egraphsen)〉, 〈에우티미데스가 만들었다(Euthymides epoiesen)〉 같은 서명이 BC 5세기 아테네 도자기에 자주 등장합니다. 큰 조각가만 이름을 남긴 것이 아니라, 한 도자기 작업실의 한 명의 화가도 자기 손이 한 일에 자기 이름을 적었어요. 이름이 처음 새겨지기 시작한 그 시대의 풍경이, 거대한 신상이 아니라 한 도자기의 작은 글자에서도 읽힙니다.

시작BC 530경 아테네
기법검은 바탕에 붉은 인물
유명 화가에우프로니오스 · 에우티미데스
남은 작품전 세계 박물관 다수
큰 조각가만 이름을 남긴 것이 아니에요. 한 도자기 작업실의 한 명의 화가도 자기 손이 한 일에 자기 이름을 적었습니다.
39
D
PART D · 5 STORIES · 그들의 한 끼, 한 곡, 한 벌

한 도시의 일상

신전과 조각만이 아닙니다. 그 시대 한 시민이 매일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들었으며, 어떤 글자를 손에 쥐었는지 — 그 일상의 다섯 자리가 한 시대의 가장 친근한 풍경을 알려 줍니다.

한 시대의 일상 안에 미술의 또 한 페이지가 있습니다.
40 · CHAPTER OPENER
40
PART D · 다섯 가지 잡학

그 시대 시민의 일상

한 가지씩 천천히 읽어 보아 주세요.

D1

심포지움의 식탁

와인·올리브·생선 한 조각 · P.42
D2

도예 작업실의 도구

물레·붓·가마 · P.44
D3

옷과 향수

키톤·히마티온·올리브유 향수 · P.46
D4

리라와 아울로스

그리스 음악의 두 악기 · P.48
D5

학교의 시조 — 아카데미아

플라톤이 BC 387년 세운 한 학교 · P.50
41
D · 01 · 식탁
심포지움 식탁
고대 그리스 심포지움의 식탁 — 와인을 묽게 탄 〈크라테르〉, 평평한 잔 〈킬릭스〉, 올리브와 무화과, 그리고 작은 청동 그릇들.
42
D · 01 · 심포지움의 식탁

올리브와 와인 한 잔

한 시대의 식탁이 그 시대를 가장 친근하게 알려 줍니다. BC 5세기 아테네 시민의 식탁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리스 사람들의 일상 식단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3종 세트〉라 부를 만한 핵심이 있었어요 — 곡물(빵·죽), 올리브, 와인. 이 세 가지가 BC 8세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부터 BC 4세기 플라톤의 〈향연〉까지 그리스 식탁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치즈와 무화과·대추·꿀, 그리고 가끔의 생선 한 조각이 더해지면 일상의 한 끼가 완성되었어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리스 사람들이 와인을 〈물에 타서〉 마셨다는 것입니다. 〈크라테르(krater)〉라 부르는 큰 그릇에 와인과 물을 보통 1:3 비율로 섞었어요. 와인을 그대로 마시는 것은 〈야만인의 풍습〉으로 여겨졌습니다. 한 점의 도자기에 그려진 잔치 풍경에는 거의 항상 가운데에 큰 크라테르가 있고, 그 옆에 평평한 잔 〈킬릭스(kylix)〉를 든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어요.

고기는 일상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양·돼지·소를 먹기는 했지만, 보통 신전에 바치는 제사 후에 함께 나눠 먹는 형식이었어요. 한 도시 전체가 한 번 모여 한 마리 황소를 잡고 모두가 한 점씩 나누어 먹는 그 풍경 — 그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가장 큰 〈한 끼〉였습니다. 매일의 식사는 검소했지만, 신을 위한 한 끼는 풍성했지요. 한 도시의 일상과 의식이 그렇게 같이 흘러가던 시대였어요.

3종 세트곡물·올리브·와인
와인물에 1:3 희석
큰 그릇크라테르 (혼합용)
고기제사 후 나눔
매일의 식탁은 검소했지만, 신을 위한 한 끼는 풍성했어요. 일상과 의식이 같이 흐르던 시대의 식탁입니다.
43
D · 02 · 도예 도구
도예 도구
고대 아테네 도예 작업실의 도구들 — 물레, 청동 끌, 가는 붓, 안료 통, 점토 덩이.
44
D · 02 · 도예 작업실

한 점의 도자기가 완성되는 자리

아테네의 도예 거리는 도시 북서쪽의 〈케라메이코스(Kerameikos)〉라 부른 한 동네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쓰는 〈ceramic(도자기)〉이라는 영어 단어가 그 동네 이름에서 왔어요.

도자기 한 점이 완성되는 데에는 보통 다섯 단계가 필요했습니다. 첫째, 점토를 캐서 며칠 동안 발로 밟아 매끈하게 다지는 일. 둘째, 물레 위에서 형태를 빚는 일. 그리스 도예가의 물레는 두 사람이 함께 다뤘어요. 한 사람은 발로 물레를 돌리고, 다른 한 사람은 손으로 점토를 빚었습니다.

셋째, 그늘에 며칠 말려서 형태를 굳히는 일. 넷째, 그림을 그리는 일. 그리스 도자기의 검은색은 사실 〈안료〉가 아니라 〈가마 안의 산소량을 조절해 만든 화학 변화〉였습니다. 도예가는 점토 표면에 미리 묽게 갠 점토 한 겹을 발라 두고, 그 부분이 검게 변하도록 가마 안의 공기를 단계별로 조절했어요. 이 기술이 BC 6~5세기 아테네 도예의 가장 큰 비밀이었고, 그 비밀이 BC 1세기경에 결국 잊혀집니다 — 약 1,500년 후 19세기 화학자들이 다시 복원해 낼 때까지요.

다섯째, 가마에서 굽는 일. 가마는 보통 도시 외곽에 있었고, 도예가들은 작품을 가마에 넣고 며칠을 잠도 못 자며 불을 조절했어요. 그 시대 도자기 한 점에 평균 약 한 달이 걸렸고, 가장 정교한 한 점은 두 달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ceramic〉이라는 한 단어 안에 그 한 달의 시간이 들어 있는 셈이지요.

동네케라메이코스
단계다지기 → 빚기 → 그리기 → 굽기
검은색화학 변화 (산소 조절)
소요1점당 약 한 달
우리가 쓰는 〈ceramic〉이라는 한 단어 안에 BC 5세기 아테네 한 동네의 한 달이 들어 있습니다.
45
D · 03 · 옷·향수
그리스 옷과 장신구
고대 그리스인의 일상 — 흰 아마 천 키톤, 두꺼운 망토 히마티온, 작은 향수병 〈아리발로스〉, 그리고 청동 빗과 화장 기구.
46
D · 03 · 옷·향수

키톤 한 장과 올리브 향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옷차림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한 장의 천을 몸에 두르는 것이 거의 전부였어요.

가장 기본 옷이 〈키톤(chiton)〉이었습니다. 사각형 흰 아마 천 한 장을 어깨에서 핀으로 고정하고 허리에 끈을 두르는 방식이었어요. 남자는 무릎까지 짧게, 여자는 발목까지 길게 입었습니다. 그 위에 두꺼운 망토 〈히마티온(himation)〉을 둘렀어요. 추운 날에는 따뜻하게,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우아하게 두를 수 있는 한 장의 천이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 사람들이 옷에 〈색〉을 잘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흰색이 가장 일반적이었고, 부유층은 자주색·노란색·청색 같은 색을 가끔 썼지만, 일상의 거의 모든 옷이 흰색이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다른 한 가지에 큰 정성을 쏟았습니다 — 향수입니다.

그리스 향수는 올리브유를 베이스로 만들어졌어요. 올리브유에 장미·라벤더·나무 수지 등 향료를 우려내어 만든 〈향유〉를 작은 도자기 병 〈아리발로스(aryballos)〉에 담았습니다. 이 작은 동그란 향수병은 보통 끈에 매달아 손목에 걸고 다녔어요. 운동을 마치고 몸을 닦을 때, 식사 후 손님을 맞이할 때, 또는 신전에 봉헌할 때마다 사용되었습니다. 한 가지 향이 한 사람의 인사가 되던 시대 — 우리가 오늘 쓰는 향수의 시조가 그 작은 도자기 병에 있었습니다.

기본옷키톤 (아마 천)
망토히마티온
향수아리발로스 (올리브유 기반)
흰색 위주
옷에는 색을 잘 쓰지 않았지만, 향에는 정성을 쏟았습니다. 한 가지 향이 한 사람의 인사가 되던 시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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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4 · 음악
심포지움의 음악
아테네 심포지움의 한 풍경 — 비스듬히 누운 사람들 사이에서 한 명의 〈아울레트리스(aulos 연주자)〉가 이중관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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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4 · 그리스 음악

리라와 아울로스

고대 그리스 음악의 두 핵심 악기 — 한 가지는 신을 위한 〈리라〉, 다른 한 가지는 잔치를 위한 〈아울로스〉.

그리스 음악의 주요 악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가 〈리라(lyra)〉입니다. 거북이 등껍질을 공명통으로 사용한 작은 발현 악기로, 보통 4~7개의 줄을 손가락으로 뜯어 연주했어요. 음색이 부드럽고 명상적이라 〈아폴론의 악기〉로 여겨졌습니다. 학교에서 어린아이가 처음 배우는 악기이기도 했고, 시인이 자기 시를 노래할 때도 이 악기를 무릎에 올려 연주했어요.

둘째가 〈아울로스(aulos)〉입니다. 이중관 피리로, 두 자루의 갈대 관을 동시에 입에 물고 부는 악기였어요. 음량이 크고 음색이 격렬해서 〈디오니소스의 악기〉로 여겨졌습니다. 심포지움이나 큰 잔치, 그리고 디오니소스 극장의 합창단 반주에 주로 사용되었어요. 〈아울레트리스(auletris)〉라 부른 여성 아울로스 연주자가 심포지움의 분위기를 만드는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리스 음악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음악이 사람의 성격을 만든다〉고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음악의 종류를 엄격히 분류해야 한다고 적었어요. 도리아 선법은 용감한 시민을 만들고, 프리기아 선법은 격정적인 사람을 만들며, 리디아 선법은 부드러운 사람을 만든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한 시대 사람들이 음악을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을 빚는 도구〉로 보았다는 사실 — 그것이 어쩌면 그 시대를 〈고전〉으로 만든 한 가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리라거북 등껍질 4~7현
아울로스이중관 갈대 피리
신 분류아폴론 vs 디오니소스
교육플라톤의 선법 이론
한 시대 사람들이 음악을 〈한 사람의 인격을 빚는 도구〉로 보았다는 사실 — 그 마음이 〈고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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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5 · 아카데미아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BC 387년 아테네 외곽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 — 인류 최초의 〈학교〉라 부를 만한 그 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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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05 · 학교의 시조 · BC 387

한 단어가 시작된 자리 — 아카데미아

우리가 오늘 〈아카데미〉라 부르는 그 단어 — 영화 〈아카데미상〉부터 한 도시의 〈음악 아카데미〉까지 — 그 단어가 처음 시작된 자리가 BC 387년의 아테네에 있습니다.

플라톤은 BC 427년에 태어났습니다. 그가 28세였을 때 스승 소크라테스가 BC 399년에 처형되는 일을 직접 목격했어요. 그 사건이 그의 평생을 흔들었습니다. 그 후 약 12년 동안 그는 이집트와 이탈리아 일대를 떠돌아다녔고, 마침내 BC 387년 약 40세에 아테네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 한 학교를 세우기로요.

장소는 아테네 시내가 아니라 도시 외곽 약 1.5km 떨어진 한 작은 숲이었습니다. 그 숲의 이름이 〈아카데모스(Akademos)〉라는 그리스 신화의 한 영웅의 이름에서 왔어요. 그래서 학교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아(Academia)〉가 되었습니다. 이 한 학교가 약 90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운영되었습니다. BC 387년부터 AD 529년까지 —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교도 학교〉를 모두 폐쇄할 때까지요.

아카데미아에서 무엇을 가르쳤을까. 수학,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학〉. 학교 입구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시오(Ἀγεωμέτρητος μηδεὶς εἰσίτω)." 이 학교에서 약 20년을 보낸 한 청년이 있었어요. 그의 이름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입니다. 그도 BC 335년에 자기만의 학교 〈리케이온(Lykeion)〉을 따로 세웠고, 그 이름에서 우리가 오늘 쓰는 〈리세움(lyceum)〉, 한국어 〈리세〉 같은 단어가 옵니다. 한 단어가 한 자리에서 시작되어 약 2,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살아 있는 — 그 사실이 이번 호가 끝나는 자리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설립BC 387 플라톤
위치아테네 외곽 아카데모스 숲
운영약 900년 (~AD 529)
제자아리스토텔레스
한 단어가 한 자리에서 시작되어 약 2,400년 동안 살아 있다는 사실 — 그것이 〈고전〉이라는 단어의 가장 좋은 정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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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X · 시대 연표

그리스의 400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BC 776 제1회 올림픽 경기 — 그리스 〈고전〉의 시작점

BC 750경 호메로스 〈일리아스〉·〈오디세이아〉

BC 600경 검은 그림 도자기 양식 시작

BC 530경 붉은 그림 도자기 양식 시작

BC 508 클레이스테네스 — 아테네 직접 민주정 도입

BC 480 페르시아 침공 — 아테네가 불타다

BC 460경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

BC 447 ~ 432 페리클레스의 아크로폴리스 재건 · 파르테논 완공

BC 440경 폴리클레이토스 〈도리포로스〉 · 〈규범(Canon)〉

BC 431 ~ 404 펠로폰네소스 전쟁 — 아테네 쇠퇴

BC 399 소크라테스 처형

BC 387 플라톤 〈아카데미아〉 설립

BC 4세기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비너스〉

BC 335 아리스토텔레스 〈리케이온〉 설립

BC 323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망 — 헬레니즘 시대 시작

BC 200경 〈사모트라케의 니케〉

BC 130경 〈밀로의 비너스〉

BC 1세기 〈라오콘 군상〉 (또는 AD 1세기)

BC 146 로마가 코린트를 점령 — 그리스가 로마의 속주가 되다

1506 라오콘 군상 발굴 — 르네상스의 한 페이지

1820 밀로의 비너스 발견

1863 사모트라케의 니케 발견

1987 파르테논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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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X · 핵심 일곱 점

이 호의 일곱 점

도리포로스

1. 파르테논 신전 BC 432 — 인류가 만든 가장 완벽한 직사각형 건축. 페이디아스 총괄.

2.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 BC 460경 — 정지된 돌 안에 처음 담긴 〈움직임〉.

3. 폴리클레이토스 〈도리포로스〉 BC 440경 — 옆 사진. 〈규범(Canon)〉이라는 책의 시조.

4.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비너스〉 BC 4세기 — 인류 최초로 알몸으로 깎인 여신.

5. 〈밀로의 비너스〉 BC 130경 — 두 팔이 사라진 한 점이 오히려 더 신비로워졌다.

6. 〈사모트라케의 니케〉 BC 200경 — 막 내려온 승리의 여신의 0.5초.

7. 〈라오콘 군상〉 BC 1세기경 — 1506년 발견되어 미켈란젤로의 양식을 만든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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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PHON · 닫는 글

두 번째 호를 다 따라간 후

EDITORIAL

Editor — Luna Whale
Curator — 손창범 (루나웨일 아트랩 원장)
2026년 6월 1쇄

이 호의 4부

A 시대 풍경 5장면 · B 이름이 새겨진 사람 5장면 · C 다섯 점 · D 일상 5가지 · 부록(연표·일곱 점). 한 도시가 빚은 인류 고전의 400년.

주요 참고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950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페리클레스〉 · 플라톤 〈향연〉·〈국가〉 · 대영박물관·루브르·바티칸·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디지털 컬렉션

이미지 출처

대부분의 작품 사진은 Wikimedia Commons의 퍼블릭 도메인 자료를 사용했습니다. 시대 풍경과 잡지식 일러스트는 미드저니 v7로 재현했습니다.

NEXT ISSUE · Vol.03 예고
로마와 비잔틴

BC 1세기 폼페이의 어느 한낮부터 AD 8세기 콘스탄티노플의 한 새벽까지. 한 제국이 그리스의 흙을 자기 흙으로 빚어낸 9세기.

LUNA WHALE · ART HISTORY VOL.02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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