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수학 Luna Math · 2026 June
Vol
01
JUNE · 2026
아르키메데스
SPECIAL ISSUE · 한 사람을 따라가는 잡지

아르키메데스

한 사람과 그가 흔든 시대 — BC 287 시러큐스에서 1906 콘스탄티노플까지, 한 명의 수학자가 어떻게 수식·전쟁·역사·후세를 흔들었는지.

LUNA WHALE · MATH ISSUE 54 PAGES · 4 PARTS
EDITOR'S LETTER · 여는 글

이번 호부터 루나 수학의 잡지는 한 권에 한 명의 수학자만 다루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을 짧게 소개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대신, 그 한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손으로 만든 도구, 남긴 수식, 그가 죽고 나서 일어난 일까지 한 권 안에 담아 보려고 합니다.

창간호의 주인공은 아르키메데스입니다. BC 287년 시칠리아 시러큐스에서 태어나 BC 212년 같은 도시에서 로마 병사의 손에 죽기까지, 약 75년의 인생이 한 도시 안에 있었습니다. 평생 도형을 그리고 무게를 재고 부피를 재던 그 사람은 결국 그 도형들을 지키려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익숙합니다. 〈Eureka!〉 한 마디, 지렛대로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는 호언, 묘비에 새긴 구와 원기둥. 그러나 그 익숙한 일화 뒤에는 더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시칠리아라는 작은 섬이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기에 한 수학자가 무슨 무기를 만들었고, 그 무기는 사실인가 전설인가. 그가 남긴 수식들이 천 년이 넘게 도서관 양피지 사이에 잠들어 있다가 어떻게 1906년에 발견되었는가.

이번 호는 그 모든 이야기를 네 부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제1부는 사람, 제2부는 수식, 제3부는 전쟁, 제4부는 후세입니다. 한 사람이 흔든 시대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오늘 잠수함을 띄우고 미적분을 계산할 때 쓰는 작은 원리 하나가 어쩌면 BC 3세기 시러큐스의 어느 작업실에서 처음 그어진 직선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학급에서, 또 가정의 책상 위에서 한 페이지씩 천천히 넘겨 봐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음 호의 주인공은 1912년 영국에서 태어난 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아르키메데스로부터 약 2,200년 떨어져 있지만, 닮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호를 펼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1일 · 루나웨일 수학 편집실
EDITOR — Luna Whale
02
CONTENTS · 목차

한 사람을 따라가는 4부

A

사람 — 시러큐스의 어느 청년

BC 287 출생부터 알렉산드리아 유학, Eureka 일화, 지렛대 시연, 책상 위의 도구들까지. 한 사람의 일상을 따라가는 첫 번째 부.

P.04 – P.15
B

수식 — 그가 남긴 한 줄들

정96각형으로 좁힌 π, 묘비에 새긴 구와 원기둥, 〈모래알 헤는 자〉의 큰 수, 1906년에 재발견된 〈방법〉.

P.16 – P.27
C

전쟁 — 시러큐스 공방전

2차 포에니 전쟁, 갈고리 발톱과 태양광 거울, 그리고 BC 212년 모래에 도형을 그리던 노인의 마지막 한마디.

P.28 – P.39
D

후세 — 잠들어 있던 천 년

9세기 바그다드 〈지혜의 집〉, 르네상스의 다빈치 노트, 1906년 콘스탄티노플 양피지 발견, 그리고 오늘의 잠수함과 위성.

P.40 – P.51
03
A
PART A · 5 STORIES · 사람

시러큐스의 한 사람

BC 287년 시칠리아 동남쪽 시러큐스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천문학자 페이디아스의 아들이었고, 자라서 알렉산드리아로 유학을 떠났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평생을 그 작은 항구 도시에서 살며 도형을 그리고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부는 그 한 사람의 일상을 따라가는 시간입니다.

한 항구 도시 안에서, 한 평생의 도형이 시작되었습니다.
04 · CHAPTER OPENER
04
PART A · 다섯 장면

한 사람의 다섯 장면

청년 시절의 알렉산드리아 유학에서 책상 위의 도구들까지, 한 평생의 다섯 장면을 차례로 보여 드립니다.

A1

시러큐스의 한 청년

BC 287 ~ 알렉산드리아 유학 · P.06
A2

고향의 항구로 돌아오다

시러큐스 풍경 · 시칠리아의 그리스 식민 도시 · P.08
A3

"Eureka!" 그날의 목욕탕

히에론 2세의 황금 왕관과 부력의 원리 · P.10
A4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

지렛대 원리와 한 손으로 끌어올린 배 · P.12
A5

책상 위의 도구들

아르키메데스 나선 펌프와 천구의 · P.14
05
A · 01 · 청년
청년 아르키메데스
스무 살의 아르키메데스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두루마리와 청동 기구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한 청년의 한낮.
06
A · 01 · 청년 시절 · BC 27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

BC 287년 시러큐스에서 태어난 아이는 스무 살이 되기 전 알렉산드리아로 떠났습니다. 헬레니즘 세계의 가장 큰 도서관이 있던 도시였습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아버지는 페이디아스라는 천문학자였습니다. 시러큐스의 왕족 친척이기도 했고, 별과 도형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듯합니다. 청년이 된 아들이 알렉산드리아로 유학을 떠난 것도 그 영향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였고, 50만 권의 두루마리를 소장한 인류 최대의 도서관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청년은 두 사람을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됩니다. 한 사람은 〈원론〉의 저자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의 제자들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지구 둘레를 처음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였습니다. 〈방법〉이라는 책의 머리글은 사실 에라토스테네스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합니다. "내가 새로 알아낸 도형의 무게 중심을 친구에게 알리려고 이 글을 씁니다"라는 한 줄이 그것입니다. 수학자가 자기 발견을 친구에게 자랑하던 그 시대의 풍경이 거기 남아 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다시 시칠리아로 돌아왔을 때, 아르키메데스는 이미 그 시대의 가장 정교한 기하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평생을 보낸 곳은 알렉산드리아도 로마도 아니라, 떠나온 작은 항구 도시 시러큐스였습니다.

시대BC 287 출생
도시시러큐스
유학알렉산드리아
친구에라토스테네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들어선 스무 살 아르키메데스는 어떤 책을 가장 먼저 펼쳐 봤을까요?
07
A · 02 · 시러큐스
고대 시러큐스 항구
시러큐스 항구 — BC 3세기 시칠리아 동남쪽의 그리스 식민 도시. 흰 대리석 기둥과 붉은 돛의 어선들, 멀리 에트나 화산이 보입니다.
08
A · 02 · 고향 · 시러큐스

시칠리아의 그리스 식민 도시

시러큐스는 BC 734년 코린토스 사람들이 세운 그리스 식민지였습니다. 키케로는 훗날 이 도시를 "그리스 식민 도시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곳"이라 적었습니다.

시러큐스는 시칠리아 섬 동남쪽 끝에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두 개의 항구가 만들어진 자리였고, 그 항구가 그대로 도시의 두 심장이 되었습니다. 큰 항구에는 군선이 들어왔고, 작은 항구에는 어선과 상선이 드나들었습니다. 도시 안쪽에는 그리스식 극장이 있었고, 디오니소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도형을 그리던 작업실도 분명 그 어딘가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 도시는 BC 3세기에 들어 묘한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서쪽으로는 카르타고가, 북쪽으로는 로마가 있었고, 둘 사이의 1차 포에니 전쟁(BC 264-241)이 한참 시칠리아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시러큐스의 통치자 히에론 2세는 영리한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카르타고 편이었다가 곧 로마와 동맹을 맺어 약 50년 동안의 평화를 시러큐스에 가져왔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평생 작업실에서 도형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 50년의 평화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BC 215년, 히에론 2세가 죽고 그의 후계자는 로마를 떠나 카르타고 편에 섰습니다. 시러큐스의 평화가 그렇게 끝났습니다. 작업실 너머의 항구가 곧 전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아르키메데스는 알고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건립BC 734
위치시칠리아
통치히에론 2세
동맹로마 → 카르타고
아르키메데스가 살던 도시에는 두 개의 항구가 있었습니다. 한 항구는 군선의 자리, 다른 항구는 어선의 자리.
09
A · 03 · EUREKA
Eureka 일화
"Εὕρηκα!" — 알아냈다. BC 250년경, 시러큐스의 어느 공중 목욕탕에서 한 사람이 알몸으로 거리를 뛰쳐나갔습니다.
10
A · 03 · Eureka · 부력의 원리

목욕탕에서 뛰쳐나간 사람

로마 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BC 1세기에 적어 둔 이 일화는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가 그날 부력의 원리를 발견했다는 것.

왕 히에론 2세는 어느 날 한 가지 의심을 품습니다. 자기가 신전에 봉헌하기 위해 만든 황금 왕관에 은이 섞인 것은 아닐까. 왕은 아르키메데스를 불러 묻습니다. "왕관을 부수지 않고 진짜 황금인지 알아낼 수 있겠느냐." 며칠 동안 답을 찾지 못한 학자는 어느 날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담갔습니다.

물이 욕조 가장자리로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는 순간, 답이 떠올랐습니다. 자기 몸이 밀어낸 물의 부피만큼 자기 몸의 부피를 알 수 있다는 사실. 같은 무게의 황금과 은은 부피가 다르므로, 왕관을 물에 담그면 진짜 황금인지 알 수 있다는 사실. 비트루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 순간 학자는 "Εὕρηκα!" — 알아냈다 — 를 외치며 알몸으로 거리를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실제로 왕관에는 은이 섞여 있었고, 왕관을 만든 금세공인은 처벌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발견은 〈떠 있는 물체에 관하여〉라는 두 권짜리 책으로 정리되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잠수함이 물 위에 뜨는 원리, 헬륨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원리, 비행선이 공중에 머무는 원리 — 그 모든 것의 첫 한 줄이 그날 시러큐스의 어느 목욕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황금 왕관
황금 왕관
목욕탕 일화
목욕탕
청년 시절
학자
시러큐스
시러큐스
기록비트루비우스
시기BC 250년경
원리부력
떠 있는 물체
"Eureka!" 한 마디는 그 후 2,200년 동안 누군가가 어떤 답을 찾았을 때마다 다시 사용됩니다.
11
A · 04 · 지렛대
지렛대 시연
"발 디딜 자리만 있다면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 — 지렛대와 도르래 시스템으로 한 손에 군선을 끌어올린 공개 시연.
12
A · 04 · 지렛대 · 도르래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에 적어 둔 일화입니다. 시러큐스 항구의 시연이었고, 지켜보던 사람 중 하나가 히에론 왕이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왕에게 한 줄을 보냈다고 합니다. "내게 발 디딜 자리만 주신다면 지구도 들어 올리겠습니다(Δῶς μοι πᾶ στῶ καί τὰν γᾶν κινάσω)." 왕은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시험을 부탁합니다. 항구에 정박한 한 척의 군선을 한 사람의 힘으로 끌어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군선은 보통 수십 명이 노를 저어야 움직이는 무게입니다. 하지만 그날 항구에는 묘한 장치가 설치됩니다. 여러 단의 도르래(혹은 그가 발명한 복합 도르래 시스템)와 지렛대를 결합한 기계였고, 한쪽 끝에는 한 줄이 달려 있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자리에 앉아 그 한 줄을 천천히 잡아당겼습니다. 그러자 큰 군선이 항구 위로 천천히, 부드럽게 끌려 올라왔습니다. 지켜보던 시민들 중 누구도 처음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적었습니다.

그날의 시연이 가르쳐 준 것은 한 가지입니다. 지렛대의 짧은 팔과 긴 팔의 비율이 클수록, 작은 힘으로도 큰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단순한 비례 관계. 그 관계는 〈평면의 평형에 관하여〉라는 책의 핵심 명제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의 크레인, 자동차 정비소의 잭, 가위와 펜치, 그리고 멀리는 우주 발사체의 분리 메커니즘까지 — 그 모든 것이 그날 시러큐스 항구에서 끌려 올라온 한 척의 군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록플루타르코스
현장시러큐스 항구
원리지렛대 비례
평면의 평형
지렛대 한 개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의 한계는 어디일까요. 그 한계를 처음 계산한 사람이 그였습니다.
13
A · 05 · 도구들
아르키메데스의 도구들
아르키메데스의 작업실 — 나선 펌프 모형, 청동 천구의, 컴퍼스, 밀랍판, 두루마리. 한 책상 위에 그가 만든 세계가 있었습니다.
14
A · 05 · 도구 · 발명품

책상 위의 다섯 가지 도구

그는 도형만 그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그린 도형을 손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도구는 아르키메데스 나선 펌프입니다. 비스듬히 기울인 통 안에 나선형 날개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바닥의 물이 위쪽으로 끌려 올라옵니다. 이집트 나일강 농수로의 물을 길어 올리는 데 사용된 이 펌프는 오늘날에도 폐수 처리장과 우주 실험에서 같은 원리로 사용됩니다. 두 번째는 천구의(armillary sphere)입니다. 별의 위치를 모형으로 보여 주는 청동 기구로, 키케로는 시러큐스 함락 후 로마로 가져온 이 기구를 두고 "이 한 개의 도구가 우주 전체를 담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세 번째는 합성 도르래입니다. 한 줄에 여러 개의 도르래를 연결해 큰 무게를 한 사람의 힘으로 들어 올릴 수 있게 한 장치였고, 앞 페이지의 군선 시연이 그 결과였습니다. 네 번째는 물시계와 자동 인형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물의 흐름으로 시간을 재고, 그 시간에 맞춰 작은 인형이 움직이는 정교한 기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전쟁 무기였습니다 — 갈고리 발톱과 거대 투석기, 그리고 전설로 남은 태양광 거울. 그 이야기는 제3부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한 사람의 책상에 이 다섯 가지가 모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 가끔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BC 3세기 시러큐스의 어느 작업실의 풍경이었습니다.

발명나선 펌프
발명천구의
발명복합 도르래
발명전쟁 무기
한 사람이 만든 다섯 가지 도구가, 2,20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원리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15
B
PART B · 4 STORIES · 수식

그가 남긴 한 줄들

수학자가 한 사람 죽고 나면 그 사람의 수식만 남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남긴 한 줄들은 정96각형으로 좁힌 π, 묘비에 새긴 구와 원기둥, 우주의 모래알을 헤아린 큰 수의 표기법, 그리고 천 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방법〉이라는 책 한 권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 뒤에 남는 것은 그가 그어 둔 한 줄.
16 · CHAPTER OPENER
16
PART B · 네 줄의 수식

그가 그어 둔 네 줄

π를 좁히고, 구와 원기둥을 묶고, 우주의 모래알을 헤아리고, 적분의 시조를 남겼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 그어 둔 네 줄을 차례로 보여 드립니다.

B1

π를 좁힌 사람

정96각형 · 3.1408 < π < 3.1429 · P.18
B2

묘비에 새긴 구와 원기둥

3분의 2 비율 · 그가 가장 자랑한 정리 · P.20
B3

〈모래알 헤는 자〉

우주의 모래알 수와 지수 표기법의 시조 · P.22
B4

잃어버린 책 〈방법〉

1906년에 양피지에서 발견된 적분의 시조 · P.24
B5

남긴 책 다섯 권

평면의 평형 · 떠 있는 물체 · 나선 · 구와 원기둥 · 방법 · P.26
17
B · 01 · π
정96각형 π 도해
정96각형으로 좁힌 π — 원에 내접하는 96각형과 외접하는 96각형 사이의 둘레 비율로 π를 좁혀 갔습니다.
18
B · 01 · π · 원의 측정에 관하여

3.1408과 3.1429 사이

아르키메데스가 〈원의 측정에 관하여〉에서 보여 준 한 줄입니다. π 가 정확히 어디쯤 있는지를 처음으로 좁혀 둔 사람이 그였습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원 안쪽에 정육각형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정십이각형, 그 다음에는 정이십사각형, 마침내 정구십육각형까지 그려 갔습니다. 동시에 원 바깥쪽에도 같은 방식으로 정96각형을 외접시켰습니다. 안에 그린 다각형의 둘레는 원의 둘레보다 짧고, 밖에 그린 다각형의 둘레는 원의 둘레보다 깁니다. 이 두 다각형의 둘레 사이에 진짜 원의 둘레가 있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96각형까지 그린 후의 결과가 이것입니다. 3 + 10/71 < π < 3 + 1/7. 소수로 풀면 약 3.1408과 3.1429 사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π = 3.1415926... 의 한가운데에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컴퓨터 한 대도 없던 BC 3세기에, 한 사람이 손으로 그린 도형만으로 4자리까지 정확한 답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방법을 '소진법(method of exhaustion)'이라 불렀습니다. 어떤 모양에 점점 가까워지는 다른 모양들을 무한히 그려 가면, 결국 진짜 모양에 닿는다는 발상이었습니다. 2,000년 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발견한 미적분의 시조가 사실은 이 한 사람의 96각형이었습니다.

결과3.1408 ~ 3.1429
방법정96각형 소진법
원의 측정
오차0.001 미만
한 사람이 BC 3세기에 손으로 그어 둔 4자리 π. 컴퓨터 없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19
B · 02 · 묘비
아르키메데스 묘비
시러큐스 외곽의 어느 무덤가 — 잡초에 묻힌 묘비 위에는 한 도형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구와 원기둥, 그리고 그 사이의 비율 한 줄.
20
B · 02 · 묘비 · 구와 원기둥

3분의 2라는 비율

자기 묘비에 직접 새기고 싶다고 부탁한 도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평생 알아낸 것 중 이 한 줄을 가장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한 원기둥 안에 꼭 맞게 들어가는 구를 상상해 봅니다. 구의 지름과 원기둥의 지름이 같고, 구의 지름과 원기둥의 높이도 같습니다. 그 두 도형의 부피와 표면적을 비교하면 어떤 관계가 나올까.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아르키메데스는 한 줄로 답을 적었습니다. "구의 부피는 원기둥의 부피의 정확히 3분의 2이며, 구의 표면적도 원기둥의 옆면적의 정확히 3분의 2이다."

같은 비율이 부피에서도 표면적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그를 매혹시켰습니다. 자기가 평생 알아낸 것 중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한 줄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 "내가 죽으면 묘비에 이 도형을 새겨 다오." 친구들은 그 부탁을 지켰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죽고 137년이 지난 BC 75년, 시러큐스 외곽 어느 무덤가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한 로마인 정치가가 시러큐스에 출장 와 있다가 그 무덤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키케로였습니다. 그는 〈투스쿨룸 대담〉에 그 날을 적어 두었습니다. "가시덤불에 묻힌 작은 비석을 찾았는데, 그 위에 구와 원기둥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찾던 사람의 무덤이었다."

비율구 : 원기둥 = 2 : 3
구와 원기둥
발견키케로 BC 75
기록투스쿨룸 대담
자기 평생의 발견 중 단 하나만 묘비에 새긴다면 어떤 한 줄을 새기고 싶으세요?
21
B · 03 · 모래알
모래알 헤는 자
밤바다의 모래알을 헤아리는 학자 — "우주를 모래로 가득 채운다면 모래알은 몇 알일까." 그가 BC 3세기에 던진 한 가지 질문.
22
B · 03 · 큰 수 · 모래알 헤는 자

우주를 모래로 채운다면

〈모래알 헤는 자(The Sand Reckoner)〉라는 책 한 권이 그 답을 적기 위해 쓰였습니다. 시러큐스의 새 왕 겔론에게 보낸 편지 형식이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 시대의 그리스 숫자 체계는 미리아드(만, 10,000)까지만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보다 큰 수는 표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 했습니다. 우주 전체를 모래로 가득 채우면 모래알은 몇 알일까. 답을 적으려면 새 표기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미리아드의 미리아드(1억)'을 한 단위로 잡고, 그 단위의 미리아드의 미리아드를 또 한 단위로 잡는 식의 지수 표기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10의 100승, 10의 200승 같은 형태로 표기하는 그 방식의 시조가 그것입니다. 그는 이 표기법으로 답을 계산했습니다. 우주의 모래알 수는 약 8 × 10의 63승. 오늘날 우리가 아는 우주의 양성자 수(약 10의 80승)와 견주면 작지만, 당시의 우주관에서는 매우 정확한 추정치였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모래알을 세려고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수학이 아직 표기할 수 없는 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책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책 안에서 자기 시대의 수학 한계를 한 단계 넘어서 보였던 것입니다.

모래알 헤는 자
약 8 × 10⁶³
대상겔론 왕
시조지수 표기법
우리 동네 해수욕장의 모래알 수는 몇 알일까요. 한 번 같이 추정해 보세요.
23
B · 04 · 〈방법〉
아르키메데스 양피지
팔림프세스트 양피지 — 중세 수도사들이 새 글씨 아래에 지운 옛 그리스 도형이 희미하게 비쳐 보입니다. 천 년을 잠들어 있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
24
B · 04 · 잃어버린 책 · 〈방법〉

천 년을 잠든 한 권

아르키메데스가 친구 에라토스테네스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책이었습니다. 〈방법(The Method)〉이라는 한 단어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도형의 부피와 면적을 구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풀어 보였습니다. 한 도형을 무한히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그 무게를 비교하는 방식이었는데, 오늘날의 적분과 거의 같은 발상이었습니다. 2,000년 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만들어 낸 그 출발점이 사실은 이 한 권 안에 이미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느 시점에 사라졌습니다. 13세기 비잔틴 제국의 한 수도사가 양피지를 재활용한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정확히는 1229년, 요안네스 미로나스라는 수도사가 옛 그리스어 책 한 권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새 기도문을 적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양피지는 비쌌고, 옛 그리스 글자는 사포로 밀어 지운 뒤 위에 새로 써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방법〉은 기도문 아래에 묻혀 사라졌습니다. 그 후 약 700년 가까운 시간을 그렇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1906년 덴마크 학자 요한 루드비그 헤이베르크가 콘스탄티노플(오늘의 이스탄불)의 한 도서관에서 한 권의 기도서를 펼쳐 봤습니다. 자세히 보니 글자 아래에 옅은 그리스어가 비치고 있었습니다. 〈방법〉이었습니다.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적분의 시조가 그렇게 발견되었습니다. 그 발견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제4부에서 더 자세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목The Method
형식편지(에라토스테네스)
소실1229 양피지 재활용
발견1906 헤이베르크
한 권의 책이 천 년을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책이 다시 펼쳐졌을 때 무엇이 처음 보였을까요.
25
B · 05 · 책 다섯
구와 원기둥 묘비
"내가 평생 자랑한 것은 이 도형 한 개입니다." 그가 친구들에게 부탁한 단 하나의 묘비 그림.
26
B · 05 · 그가 남긴 책

평생 다섯 권의 책

남아 있는 책은 다섯 권입니다. 사라진 책은 그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첫 번째 책은 〈평면의 평형에 관하여〉입니다. 지렛대의 비례와 무게 중심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첫 책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떠 있는 물체에 관하여〉. Eureka 일화의 결과물이고, 부력의 원리가 이 책 안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입니다. 묘비에 새겼던 3분의 2 비율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네 번째는 〈나선에 관하여〉. 한 점이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동시에 같은 속도로 멀어질 때 그리는 도형 — 아르키메데스 나선이라는 이름이 지금도 사용됩니다. 다섯 번째이자 가장 신비한 책이 〈방법〉입니다. 1906년에 천 년 만에 발견된 그 책입니다.

그 외에도 〈원의 측정에 관하여〉, 〈모래알 헤는 자〉, 〈포물선의 구적〉 등 수십 편의 짧은 책과 글이 남아 있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 그 정도를 적었다는 사실이 가끔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시러큐스에서 거의 75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 75년 중 50년이 평화로웠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작품은 결국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모양과 닮아 있는 듯합니다.

책1평면의 평형
책2떠 있는 물체
책3구와 원기둥
책5방법(1906 발견)
평생 단 한 권의 책을 남긴다면 어떤 한 권을 쓰고 싶으세요. 한 사람이 던졌던 같은 질문입니다.
27
C
PART C · 5 STORIES · 전쟁

시러큐스 공방전

BC 214년부터 BC 212년까지, 로마 장군 마르켈루스가 이끄는 함대가 시러큐스를 포위했습니다. 그 2년 동안 한 명의 노학자가 도시 방어를 책임졌습니다. 갈고리 발톱과 거대 투석기, 그리고 전설로 남은 태양광 거울. 한 사람이 한 도시를 어떻게 2년이나 지켰는지에 관한 다섯 장면입니다.

한 명의 수학자가 한 도시를 2년 동안 지켰습니다.
28 · CHAPTER OPENER
28
PART C · 다섯 장면

2년의 공방전

로마 함대의 도착에서 도시 함락의 마지막 한 장면까지, 시러큐스 공방전의 다섯 장면을 차례로 보여 드립니다.

C1

로마 함대의 도착

2차 포에니 전쟁 · BC 214년 · P.30
C2

갈고리 발톱

로마 군선을 들어 올린 기계 · 플루타르코스 · P.32
C3

태양광 거울

전설인가 사실인가 · MIT 2005 재현 실험 · P.34
C4

"내 원을 건드리지 마시오"

BC 212년 · 도시 함락의 마지막 장면 · P.36
C5

시러큐스 항구 지도와 무기 단면도

2년의 공방전을 한 장으로 · P.38
29
C · 01 · 함대
시러큐스 공방전
BC 214년 봄, 로마 장군 마르켈루스의 함대가 시러큐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60척의 갤리선이 도시 성벽을 향해 진형을 잡았습니다.
30
C · 01 · 2차 포에니 전쟁

한 도시가 두 제국 사이에서

2차 포에니 전쟁(BC 218-201)은 카르타고와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두고 벌인 17년의 전쟁이었습니다. 시칠리아는 그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BC 215년 시러큐스의 통치자 히에론 2세가 죽고, 그의 손자 히에로니무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어린 왕은 50년의 친로마 정책을 뒤집고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기로 합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암살되지만, 시러큐스는 이미 카르타고 편이 되어 있었습니다. 로마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BC 214년 봄, 로마 원로원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를 시러큐스 공략의 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마르켈루스는 〈로마의 검〉이라 불리던 야전 사령관이었습니다. 그가 이끈 함대는 60척의 갤리선과 보병군이었고, 시러큐스의 큰 항구를 향해 곧장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시러큐스 성벽 위에서는 한 명의 노학자가 자기 도구들을 이미 모두 준비해 둔 상태였습니다. 그가 만든 무기들이 항구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첫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로마 함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만나게 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마르켈루스의 생애〉에서 그날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마르켈루스의 함대는 시러큐스의 성벽이 단 한 사람의 작품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곧 알게 되었다."

시기BC 214 봄
사령관마르켈루스
함대60척 갤리선
기록플루타르코스
한 사람이 만든 도구들로 한 도시가 한 제국의 함대를 막아 낼 수 있을까요. 그 답이 다음 페이지에 있습니다.
31
C · 02 · 발톱
아르키메데스의 갈고리 발톱
갈고리 발톱(Claw of Archimedes) — 거대한 철 갈고리가 로마 군선을 통째로 들어 올려 뒤집어 버린 시러큐스의 가장 무서운 무기.
32
C · 02 · 갈고리 발톱 · Manus Ferrea

함선을 들어 올린 기계

'아르키메데스의 발톱(Manus Ferrea)'이라 불린 무기였습니다. 시러큐스 성벽에 매달린 거대한 지렛대의 끝에 철 갈고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로마 함대가 성벽 가까이에 진형을 좁히면, 갑자기 성벽 위에서 거대한 갈고리가 내려왔습니다. 갈고리는 함선의 뱃머리를 낚아채고, 안쪽 사람들이 지렛대 반대쪽을 잡아당기면 거대 함선이 통째로 물 위로 끌려 올라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갈고리가 풀리면 함선은 다시 물 위로 곤두박질쳐 부서지거나, 아니면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 뒤집혔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 광경을 두고 "함선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잡혀 다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고 적었습니다.

이 무기의 작동 원리는 사실 단순합니다. 그가 평생 연구한 두 가지 — 지렛대의 비례와 도르래의 합성 — 가 결합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군선의 무게를 직접 들어 올리려면 한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지렛대의 긴 팔과 짧은 팔의 비율을 충분히 크게 잡고 도르래를 여러 단 결합하면, 같은 무게를 한두 명의 힘으로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평면의 평형에 관하여〉의 원리가 시러큐스 성벽에서 그대로 작동했던 것입니다.

이 무기 때문에 마르켈루스는 결국 정면 공격을 포기하고 도시를 봉쇄하는 장기전으로 전략을 바꿉니다. 한 사람의 도구가 한 함대의 전략을 통째로 바꿔 놓았던 것입니다.

이름Manus Ferrea
원리지렛대 + 도르래
기록플루타르코스 · 폴리비오스
결과로마 정면 공격 포기
한 사람이 평생 그어 둔 한 줄의 비례식이, 한 도시를 한 함대로부터 지켰습니다.
33
C · 03 · 거울
태양광 거울 무기
청동 포물면 거울들이 햇빛을 한 점에 모아 로마 함선의 돛을 태웠다고 전해집니다. 전설인가, 사실인가.
34
C · 03 · 태양광 거울 · 전설과 사실 사이

햇빛을 한 점에 모은 무기

12세기 비잔틴의 작가 요한네스 체체스가 처음 적은 일화입니다. 시러큐스 성벽 위에 청동 거울 수십 개가 도열해 있었다고 합니다.

시러큐스의 그리스 병사들은 매끈하게 닦은 청동 거울을 들고 성벽 위에 줄지어 섰습니다. 거울들의 각도를 조심스럽게 맞춰 햇빛을 한 점에 모으면, 그 한 점에 닿은 로마 군선의 나무 돛이 갑자기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라는 이야기입니다. 체체스보다 1,400년이나 후인 17세기 데카르트는 이 일화를 두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일축했습니다.

현대에 들어 여러 차례 재현 실험이 시도되었습니다. 1973년 그리스 해군 기술자 이오안니스 사카스가 70개의 거울로 50미터 떨어진 합판 배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5년에는 MIT 학생들이 〈Mythbusters〉 쇼에서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는 미묘했습니다. 햇빛이 충분히 강한 날 정지된 표적에 한해서는 가능하지만, 흔들리는 함선에 적용하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태양광 거울 일화는 아마도 절반의 사실일 것입니다. 거울로 햇빛을 모아 로마 병사들의 시야를 가리거나 일시적으로 함선의 돛에 그을음을 만드는 정도는 가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함선 전체를 불태웠다는 부분은 후세에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 사람의 전설이 천 년에 걸쳐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기록요한네스 체체스 12C
반박데카르트 17C
재현MIT 2005
판정부분적 사실
한 가지 일화가 천 년에 걸쳐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같이 따라가 보세요.
35
C · 04 · 마지막
아르키메데스의 죽음
"내 원을 건드리지 마시오(Noli turbare circulos meos)" — BC 212년, 모래에 도형을 그리고 있던 75세의 노인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
36
C · 04 · 죽음 · BC 212년

"내 원을 건드리지 마시오"

2년의 공방전 끝에 BC 212년, 도시는 결국 함락되었습니다. 마르켈루스는 부하들에게 한 가지를 명령했습니다. "그 노인은 살려서 데려오너라."

로마군이 도시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을 때, 75세의 아르키메데스는 자기 작업실 앞 마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래 위에 도형 하나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풀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날도 평소처럼 도형 하나에 몰두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 병사 한 명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노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마르켈루스의 명령도 알지 못했습니다. 노인이 자기를 돌아보지 않자 칼을 빼 들고 위협했습니다. 노인은 그제야 한 마디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내 원을 건드리지 마시오." — 라틴어로 'Noli turbare circulos meos'. 그 한 마디 후 병사가 노인을 찔렀고, 그날 75세의 수학자가 죽었습니다.

마르켈루스는 그 소식을 듣고 깊이 슬퍼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적었습니다. 그는 시러큐스 시민들 앞에서 부하 병사를 처벌했고, 아르키메데스의 친척들을 찾아 정중히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로마가 한 도시를 함락한 날, 정작 가장 큰 손실은 한 사람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마르켈루스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137년 후 키케로가 그 무덤을 찾아내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 무덤을 잊고 있었습니다.

시기BC 212
나이75세
유언Noli turbare circulos meos
매장마르켈루스가 정중히
한 사람이 마지막에 무엇을 그리고 있었는지를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37
C · 05 · 지도
시러큐스 항구 지도
시러큐스 항구 지도 — BC 214 공방전 당시의 도시 방어선과 로마 함대 위치를 한 장에 표시한 고전 지도.
38
C · 05 · 인포그래픽 · 무기 단면도

2년의 공방전을 한 장에

시러큐스의 두 항구, 도시 성벽, 그리고 그 위에 배치된 아르키메데스의 무기들. 한 장의 지도로 정리해 봅니다.

지도를 펼치면 시러큐스의 두 항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큰 항구(Portus Magnus)가 도시 남쪽, 작은 항구가 북쪽에 있었습니다. 마르켈루스의 함대는 큰 항구를 향해 정면 공격을 했고, 동시에 보병군은 도시 북쪽 육상 성벽을 우회 공격했습니다. 두 방향의 동시 공격이었습니다.

성벽 위에는 아르키메데스의 무기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큰 투석기(Stone Throwers)는 도시 동쪽 성벽에, 갈고리 발톱은 항구 가까운 남쪽 성벽에, 태양광 거울은 동쪽 성벽 윗부분에 — 각 무기가 사거리에 맞춰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도시 전체를 한 장의 작전 지도처럼 설계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BC 212년 봄, 마르켈루스는 시러큐스의 한 종교 축제 날을 노렸습니다. 시민들이 술에 취해 경계가 느슨해진 그 새벽에 보병군이 도시 북쪽 성벽을 넘었습니다. 도시 안에서의 시가전이 시작되었고, 갈고리 발톱이나 거울로는 막을 수 없는 종류의 싸움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도구가 막아 낼 수 없는 한계가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갈고리 단면도
발톱 단면
공방전
공방전
발톱
발톱
거울
거울
기간BC 214 ~ 212
로마마르켈루스
시러큐스아르키메데스
함락종교 축제 새벽
한 사람의 도구가 한 도시를 2년이나 지켰지만, 결국 한 사람의 도구로 막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는 있었습니다.
39
D
PART D · 5 STORIES · 후세

잠들어 있던 천 년

아르키메데스가 죽고 나서 그의 책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비잔틴 도서관을 떠돌다가 9세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아랍 학자들이 그것을 번역했고, 그 번역본이 다시 르네상스의 다빈치에게 전해집니다. 그리고 1906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마지막 책 한 권이 발견됩니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천 년 동안 그의 책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야 그의 진짜 영향이 시작됩니다.
40 · CHAPTER OPENER
40
PART D · 다섯 이야기

2,200년의 여행

알렉산드리아에서 바그다드로, 다시 피렌체로, 그리고 1906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발견되기까지의 한 사람의 책 한 권의 여행.

D1

바그다드 〈지혜의 집〉

9세기 압바스 왕조 · 알 콰리즈미 · P.42
D2

다빈치의 노트

15세기 르네상스 · 메디치 도서관 · P.44
D3

1906 콘스탄티노플

헤이베르크의 양피지 발견 · P.46
D4

오늘의 아르키메데스

잠수함 · 위성 · 미적분 · 영화 · P.48
D5

시러큐스의 오늘

2,200년 후의 그 도시 · P.50
41
D · 01 · 바그다드
바그다드 지혜의 집
9세기 바그다드 〈지혜의 집(Bayt al-Hikma)〉 — 그리스어 두루마리를 아랍어로 옮기는 학자들의 책상. 등불 아래 두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42
D · 01 · 9세기 · 압바스 왕조

아랍어로 다시 쓰여지다

9세기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문은 바그다드 〈지혜의 집〉의 번역 활동을 절정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곳에서 한 사람의 책이 다시 살아납니다.

로마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흡수한 후, 아르키메데스의 책들은 비잔틴 제국으로 옮겨져 콘스탄티노플의 도서관에 보관되었습니다. 7세기에 이슬람 제국이 일어나며 시리아와 이집트가 아랍 세계로 편입되었고, 그 도서관들의 두루마리들이 8세기에 바그다드로 흘러 들어갑니다.

〈지혜의 집〉의 시작은 8세기 후반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 시기였지만, 본격적인 번역 활동이 절정에 달한 것은 9세기 알 마문 통치기(813-833)였습니다. 알 마문은 자기 시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들을 모아 그리스어 책들을 아랍어로 번역하게 했습니다. 〈지혜의 집(Bayt al-Hikma)〉이라 불린 이 기관에서 일한 학자 중 한 명이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 콰리즈미였습니다. '대수학(algebra)'이라는 단어는 그의 책 〈Al-Jabr〉에서 왔고,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단어는 그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아르키메데스의 책들을 옆에 두고 자기 책을 썼습니다.

9세기 바그다드의 그 책상이 없었다면, 아르키메데스는 어쩌면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책이 한 시대의 등불 아래에서 다시 한번 살아난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작은 기적입니다. 〈지혜의 집〉은 1258년 몽골의 바그다드 약탈 때 파괴되지만, 그 전에 옮겨진 사본들이 12세기 스페인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갑니다.

절정9세기 알 마문
학자알 콰리즈미
단어algebra · algorithm
파괴1258 몽골
한 사람의 책이 다른 언어로 옮겨지면, 그 책은 어쩌면 한 번 더 태어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3
D · 02 · 다빈치
다빈치의 노트
15세기 피렌체의 어느 작업실 — 펼쳐진 노트 위에 아르키메데스의 발명이 다시 한번 손으로 베껴지고 있었습니다.
44
D · 02 · 르네상스 · 1480년대

다빈치의 여백에 적힌 한 줄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노트 곳곳에는 아르키메데스를 인용한 흔적이 있습니다. "Archimede"라는 이름이 약 30번 등장합니다.

아랍어로 번역된 아르키메데스의 책들은 12세기에 다시 라틴어로 옮겨져 유럽으로 들어옵니다. 13세기 말에 이르러 베네치아와 피렌체의 학자들 사이에 그의 이름이 퍼지기 시작했고, 1450년대에는 메디치 가문이 운영하던 피렌체 도서관에 정식 라틴어판이 도착합니다. 그 도서관의 단골 방문자 중 한 명이 어린 다빈치였습니다.

다빈치가 1480년경 그린 〈군사 발명품 노트〉에는 아르키메데스의 갈고리 발톱과 거의 똑같은 도면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Archimede"라는 이름이 적혀 있고, "이 기계는 한 명의 사람이 한 척의 함선을 들어 올린다"는 라틴어 메모가 작은 글씨로 따로 적혀 있습니다. 1,700년이 지난 후에도 한 사람의 도면이 다른 사람의 노트 위에 다시 한번 베껴진다는 사실이 가끔은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다빈치만이 아닙니다. 갈릴레오도 〈저울에 관하여(La Bilancetta)〉를 쓰며 첫 페이지에 "이 책은 아르키메데스의 〈평면의 평형〉을 따라가는 책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케플러, 호이겐스, 그리고 결국 17세기 후반의 뉴턴까지 — 르네상스 이후의 거의 모든 자연철학자가 아르키메데스의 어깨 위에 자기 책 한 권을 얹었던 것입니다.

시기1480년대
노트군사 발명품 도면
언급 횟수약 30회
계승갈릴레오 · 케플러 · 뉴턴
한 사람의 도면이 다른 사람의 노트에 베껴지고, 그 노트가 또 다른 사람에게 옮겨진다는 사실이 가끔은 신비합니다.
45
D · 03 · 1906
1906 양피지 발견
1906년 콘스탄티노플의 한 도서관 — 덴마크 학자 헤이베르크가 펼친 한 권의 기도서. 옛 그리스 글자가 새 글자 아래에서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46
D · 03 · 1906 · 헤이베르크의 발견

한 권의 기도서 아래에서

덴마크 출신의 고전학자 요한 루드비그 헤이베르크는 1906년 콘스탄티노플의 한 작은 도서관을 방문했습니다. 한 권의 기도서를 펼쳐 본 그 순간이 그날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 기도서는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검은 잉크로 동방정교회 기도문이 단정하게 적혀 있었고, 표지는 가죽으로 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이베르크가 페이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검은 잉크 아래에 옅은 갈색의 다른 글자가 비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스어였습니다. 더 정확히는 BC 3세기 그리스어 — 아르키메데스의 글이었습니다.

13세기의 어느 비잔틴 수도사가 양피지를 재활용했던 것입니다. 옛 책의 글자를 사포로 밀어 지우고 그 위에 새 글자를 쓴 책을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라 부릅니다. 이 한 권의 팔림프세스트 안에는 〈방법〉, 〈떠 있는 물체에 관하여〉의 그리스어 원본, 그리고 그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오스토마키온〉이라는 짧은 책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한 사람의 책 세 권이 동시에 깨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양피지는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 다시 사라졌다가, 199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익명의 수집가가 220만 달러에 사들여 〈볼티모어 월터스 미술관〉에 영구 대여했습니다. 그곳에서 X선·자외선·다중분광 영상 기술로 글자를 한 자씩 복원하는 작업이 12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BC 3세기에 적은 글자를, 21세기의 위성 영상 기술이 다시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발견1906 헤이베르크
형식팔림프세스트
경매1998 크리스티 220만 달러
복원월터스 미술관 12년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한 권의 책이 1906년의 어느 오후에 다시 펼쳐졌습니다.
47
D · 04 · 오늘
오늘의 아르키메데스
오늘의 아르키메데스 — 부력으로 떠 있는 잠수함, 지렛대로 작동하는 굴착기, 미적분으로 계산되는 위성 궤도. 한 사람의 원리들이 21세기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48
D · 04 · 21세기의 영향

오늘의 아르키메데스

2,200년이 지난 지금, 한 사람의 원리들은 어디에서 작동하고 있을까. 우리 일상의 일곱 자리에서 그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잠수함과 선박입니다. 잠수함이 가라앉을 때 물탱크에 물을 채워 무게를 올리고, 떠오를 때 물을 빼서 부력을 회복합니다. 〈떠 있는 물체에 관하여〉의 한 줄이 그대로 작동하는 자리입니다. 두 번째는 크레인과 굴착기입니다. 모든 건설 현장의 거대 기계가 지렛대 비례와 합성 도르래로 작동하며, 그 한 줄은 〈평면의 평형에 관하여〉의 명제 6번에서 처음 정리된 그것입니다.

세 번째는 미적분과 위성 궤도입니다. 〈방법〉이 보여 준 무한 분할 발상이 뉴턴과 라이프니츠를 거쳐 미적분이 되었고, 그 미적분이 오늘 우주에 떠 있는 약 7,000개 인공위성의 궤도를 계산합니다. 네 번째는 아르키메데스 나선 펌프입니다. 폐수 처리장의 거대한 나선 펌프가 BC 3세기의 도면 그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π입니다. 정96각형의 결과는 컴퓨터가 1조 자리까지 계산한 지금도 여전히 모든 수학 교과서의 첫 자리에 들어가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영화와 게임 속의 무기들 — 로마 시대를 다룬 거의 모든 영화에 갈고리 발톱과 거대 투석기가 등장합니다. 일곱 번째는 우리 자신의 몸입니다. 우리가 욕조에 들어갔을 때 물이 가장자리로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면, 그 한 사람이 BC 250년경 같은 모습을 보고 외쳤던 그 한 마디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 Eureka.

자리1잠수함 · 선박
자리2크레인 · 굴착기
자리3미적분 · 위성
자리4나선 펌프
우리 집 가까이에서 한 사람의 원리가 작동하는 자리를 한 번 같이 찾아봐 주세요.
49
D · 05 · 오늘의 항구
오늘의 시러큐스
2026년 5월의 시러큐스 항구 — 폐허가 된 그리스 신전의 기둥들이 지중해 푸른 바다 옆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2,200년이 흘렀지만 항구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50
D · 05 · 시러큐스 · 오늘

2,200년 후의 그 도시

시러큐스는 지금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동남쪽, 인구 약 12만의 작은 도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오늘의 시러큐스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 부분은 BC 8세기에 세워진 옛 도시 〈오르티지아 섬〉. 그리스식 신전과 로마식 광장, 비잔틴식 교회, 그리고 노르만식 성벽이 한 자리에 겹쳐 있는 보기 드문 곳입니다. 다른 한 부분은 19세기 이후 새로 자란 본토 신시가지입니다. 두 부분이 좁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그 다리 아래에는 BC 3세기의 항구가 그대로 펼쳐져 있습니다.

오르티지아 섬을 걷다 보면 BC 5세기에 세워진 아폴로 신전의 기둥 두 개를 만나게 됩니다. 그 옆에는 18세기 바로크식 두오모 광장이 펼쳐져 있고, 광장의 한쪽 모퉁이에 작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테크노폴리스 아르키메데오(Tecnopolis Archimede)〉라는 이름의 그 박물관에는 아르키메데스의 갈고리 발톱과 태양광 거울, 나선 펌프, 천구의 모형이 실물 크기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도시가 자기가 잃은 가장 중요한 시민을 그 자리에 다시 세워 둔 것입니다.

그리고 도시 외곽 어딘가에 키케로가 BC 75년에 찾아낸 무덤의 자리가 있다고 추정되는 한 자리가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자리쯤 어딘가에서 한 사람이 BC 212년에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다가 떠났습니다. 그 도형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 자체가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의 가장 어울리는 마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치시칠리아 동남쪽
인구약 12만
유산유네스코 세계 문화
박물관Tecnopolis Archimede
한 사람이 마지막에 그리고 있던 도형이 무엇이었을지를 한 번 상상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51
APPENDIX · 시대 연표

아르키메데스의 2,200년

시대 연표

BC 287 시러큐스에서 출생 · 천문학자 페이디아스의 아들

BC 270경 알렉산드리아 유학 · 에라토스테네스와 친교

BC 250경 "Eureka" 일화 · 〈떠 있는 물체에 관하여〉

BC 240경 〈평면의 평형〉 · 〈구와 원기둥〉 · π 계산

BC 214 시러큐스 공방전 시작 · 갈고리 발톱 · 거울

BC 212 도시 함락 · 75세에 사망

BC 75 키케로가 무덤 발견

9세기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아랍어 번역

15세기 라틴어판 르네상스 유럽에 전파 · 다빈치 인용

1906 헤이베르크 콘스탄티노플 양피지 발견 — 〈방법〉 재발견

1998 아르키메데스 팔림프세스트 220만 달러 경매

2010 월터스 미술관 디지털 복원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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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X · 핵심 수식 일곱

그가 그어 둔 일곱 줄

핵심 수식 도해

1. 원의 둘레 — C = 2πr 형태의 첫 정리. 정96각형 소진법.

2. π의 범위 — 3 + 10/71 < π < 3 + 1/7 (약 3.1408 ~ 3.1429).

3. 구의 부피 — V = (4/3)πr³. 외접 원기둥의 정확히 2/3.

4. 구의 표면적 — S = 4πr². 외접 원기둥 옆면적의 정확히 2/3.

5. 지렛대의 법칙 — F₁·d₁ = F₂·d₂. 〈평면의 평형〉의 핵심 명제.

6. 부력의 원리 — 떠 있는 물체는 자기가 밀어낸 액체의 무게만큼 위로 떠받쳐진다.

7. 적분의 시조 — 도형을 무한히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무게의 합으로 부피를 구하는 발상.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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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PHON · 닫는 글

한 사람을 다 따라간 후

EDITORIAL

Editor — Luna Whale
Curator — 손창범 (루나웨일 아트랩 원장)
2026년 6월 1일 1쇄

본 호의 4부 + 25 장면

A 사람 5장면 · B 수식 5장면 · C 전쟁 5장면 · D 후세 5장면 · 부록(연표·수식 도해). 한 사람이 흔든 시대 전체를 한 권에 정리하는 잡지.

주요 참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마르켈루스〉 · 비트루비우스 〈건축십서〉 · 키케로 〈투스쿨룸 대담〉 · 헤이베르크 〈Archimedis Opera Omnia, 1910-1915〉 · 〈Walters Art Museum〉 디지털 복원본.

관련 게임

루나 수학의 〈피타고라스 투석기〉, 〈갈릴레이 투석기〉 등 수학자 게임 6종은 본 호 메타 박스의 인물별 게임 링크에서 직접 실행할 수 있습니다.

NEXT ISSUE · Vol.02 예고
한 사람이 흔든 20세기

1912년 영국에서 태어난 한 사람. 에니그마와 2차대전, 인공지능의 시조, 그리고 한 알의 사과로 끝난 비극. 한 사람이 흔든 또 한 시대의 이야기.

LUNA WHALE · MATH ISSUE VOL.01 · JUNE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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