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수학 Luna Math · Vol.03
VOL
03
VOL · 03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SPECIAL ISSUE · 한 사람을 따라가는 잡지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한 사람과 그가 흔든 시대 — 1887 인도 남부에서 1920 마드라스까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한 천재가 어떻게 수식·우정·후세를 흔들었는지.

LUNA WHALE · MATH ISSUE 54 PAGES · 4 PARTS
EDITOR'S LETTER · 여는 글

이번 호부터 루나 수학의 잡지는 한 권에 한 명의 수학자만 다루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을 짧게 소개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대신, 그 한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손으로 만든 도구, 남긴 수식, 그가 죽고 나서 일어난 일까지 한 권 안에 담아 보려고 합니다.

창간호의 주인공은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입니다. 1887년 인도 남부 에로데에서 태어나 1920년 마드라스에서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짧은 한 생애가 대부분 식민지 남인도 안에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등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그는, 여신 나마기리가 꿈에서 알려 주었다고 말한 약 3,900개의 공식을 노트에 채워 넣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어떤 이야기와도 다릅니다. 마드라스 항만청의 한 사무원이 1913년 케임브리지의 G. H. 하디 — 영국 최고의 순수 수학자 — 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 그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갔고, 왕립학회의 최연소급 회원이 되었으며, 그러고는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 세기 후, 그가 병상에서 적은 공식들이 블랙홀의 물리학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번 호는 그 모든 이야기를 네 부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제1부는 사람, 제2부는 수식과 하디, 제3부는 영국에서의 나날, 제4부는 후세입니다. 한 사람이 흔든 시대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20세기 초 남인도의 어느 사원 마을에서 자란 가난한 소년이 그어 둔 한 줄이 백 년을 건너뛰어 블랙홀의 가장자리에까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학급에서, 또 가정의 책상 위에서 한 페이지씩 천천히 넘겨 봐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음 호는 한 사람을 따라가는 대신 한 공식을 따라갑니다. 한 수식이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담아 보려고 합니다.

이번 호를 펼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1일 · 루나웨일 수학 편집실
EDITOR — Luna Whale
02
CONTENTS · 목차

한 사람을 따라가는 4부

A

사람 — 남인도의 소년

1887 에로데 출생, 쿰바코남에서 자란 독실한 브라만 집안, 신동, 카의 책, 궁핍, 그리고 1913년의 편지. 한 사람의 일상을 따라가는 첫 번째 부.

P.04 – P.15
B

공식 — 하디와의 만남

하디의 놀라움, 바다를 건넌 항해, 4년의 협업, 그리고 거기서 자라난 분할 함수.

P.16 – P.27
C

이방인 — 케임브리지의 나날

택시 번호 1729, 병과 병원, 왕립학회 회원 선출, 그리고 인도로 돌아가는 길.

P.28 – P.39
D

후세 — 잠들지 않은 공식

잃어버린 노트북과 모형 세타 함수, 백 년의 연구, 블랙홀의 물리학, 그리고 여신 나마기리.

P.40 – P.51
03
A
PART A · 5 STORIES · 사람

남인도의 한 소년

1887년 12월 22일, 한 소년이 에로데에서 태어나 타밀나두의 사원 마을 쿰바코남에서 자랐습니다. 가난하고 독실한 브라만 집안이었습니다. 그에게 숫자는 마치 아이에게 모국어가 오듯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첫 번째 부는 그 한 사람의 일상을 따라가는 시간입니다.

한 사원 마을 안에서, 한 평생의 숫자가 시작되었습니다.
04 · CHAPTER OPENER
04
PART A · 다섯 장면

한 사람의 다섯 장면

그가 태어난 사원 마을에서 하디에게 보낸 편지까지, 한 소년의 초기 생애의 다섯 장면을 차례로 보여 드립니다.

A1

남인도의 소년

1887년 12월 22일 에로데 출생 · P.06
A2

쿰바코남의 사원 마을

식민지 타밀나두의 사원 마을 · 여신 나마기리 · P.08
A3

백묵으로 계산하는 아이

선생들을 앞질러 버린 신동 · P.10
A4

카의 책과 궁핍

1903년 카의 공식집과 낙방 · P.12
A5

하디에게 보낸 편지

1913년 1월 · 증명 없는 약 120개의 정리 · P.14
05
A · 01 · 소년
소년 라마누잔
소년 시절의 라마누잔 — 숫자를 한번 만난 뒤로는 놓지 않았던 쿰바코남의 한 조용한 아이의 한낮.
06
A · 01 · 출생 · 1887년

에로데에서 태어난 아이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1887년 12월 22일 인도 남부 에로데에서 태어나, 사원 마을 쿰바코남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힌두 브라만 가문이었지만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포목상의 사무원으로 일했고, 어머니 코말라탐말은 동네 사원에서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돈은 늘 부족했고 작은 집에는 하숙생들이 붐빌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의례와 기도, 그리고 사원 마을의 리듬이 배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숫자를 한번 만난 뒤로는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를 알던 사람들은 훗날, 그가 마치 다른 사람들이 친구와 이야기하듯 숫자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작은 버릇으로 시작된 것이, 언젠가 한 소년을 바다 건너 영국에까지 데려가게 됩니다.

그는 짧은 생애의 거의 전부를 식민지 남인도에서 보냈습니다. 그가 그곳을 떠난 것은 단 한 번, 수학을 바꾼 영국에서의 4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빚어낸 곳은 언제나 그가 태어나 곁에서 자란 이 작은 사원 마을, 쿰바코남이었습니다.

출생1887년 12월 22일
고향에로데 · 쿰바코남
집안독실한 브라만
어머니코말라탐말
쿰바코남의 그 작은 집에서 어린 라마누잔이 가장 먼저 사랑에 빠진 숫자는 무엇이었을까요?
07
A · 02 · 쿰바코남
쿰바코남 사원 마을
쿰바코남의 사원 마을 — 영국령 식민지 시대 타밀나두의 한 마을. 흰 회칠을 한 고푸람 탑들, 사랑가파니 사원, 그리고 축제 저녁의 등불들.
08
A · 02 · 고향 · 쿰바코남

타밀나두의 사원 마을

쿰바코남은 영국령 식민지 시대의 남인도 타밀나두에 있던 한 사원 마을이었습니다. 그 마을의 하늘선은 힌두 사원의 거대한 조각 탑, 고푸람의 숲이었습니다.

회칠한 탑들이 거리 위로 솟아 있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는 사랑가파니 사원이 있었고, 축제의 밤이면 골목마다 등불과 음악이 가득 찼습니다. 이 집안은 의례와 기도로 짜인 독실한 브라만의 삶을 살았습니다. 라마누잔이 처음으로 석판을 숫자로 가득 채우던 그 작은 집도 분명 그 거리 어딘가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 집안은 인근 나마칼 마을의 여신 나마기리 타야르를 섬겼습니다. 작은 사실이지만 뒤에 가서 중요해집니다. 라마누잔이 평생 자기 공식이 그 여신에게서 온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마기리가 꿈속에서 자기 혀 위에 수식을 적어 주었고, 아침이면 자기는 그저 본 것을 옮겨 적을 뿐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에게 수학과 사원 마을의 신앙은 결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세계의 수학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난하고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한 마을에서,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학자들이 따라잡으려 애쓰는 직관을 가진 한 사람이 나오게 됩니다.

마을쿰바코남
지역타밀나두 · 식민지
사원사랑가파니
여신나마기리 타야르
라마누잔이 자란 마을에는 한 여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자기 공식이 그 여신에게서 온 것이라 믿었습니다.
09
A · 03 · 신동
백묵으로 계산하는 아이
사원 바닥에 백묵으로 계산하는 아이 — 돌바닥을 지우고 다시 시작합니다. 십 대 초반이 되자 동네 선생들은 그에게 더 가르칠 것이 없었습니다.
10
A · 03 · 신동

선생들을 앞질러 버린 아이

십 대 초반이 되었을 무렵, 라마누잔은 이미 주변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수학에서 멀리 나아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한 신동이었습니다.

이 집안은 학생 하숙을 쳤기 때문에, 대학생 청년들이 집에 머물 때가 있었습니다. 열한 살 무렵이 되자 아이는 그 나이 많은 학생들이 아는 수학을 모두 흡수하고 그들을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열세 살이 되자 그는 대학 강의에나 나올 법한 고급 결과들을 오롯이 혼자 힘으로 이끌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석판에, 그리고 자주는 사원의 돌바닥에 백묵으로 계산했습니다. 지우고 또 지우며 몇 번이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종이는 낭비하기에는 너무 비쌌습니다. 백묵을 지우느라 팔꿈치가 벗겨질 지경이었다고 전해지며,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잠도 거의 자지 않고 밤늦도록 숫자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동네 선생들은 하나씩 차례로, 그에게 더 가르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다섯 살에 그는 학교에서 1등을 하고 작은 상들을 받았습니다. 그를 만난 사람은 모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여기 수학을 공부해야 할 과목이 아니라 그저 보이는 무언가로 다루는 한 정신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재능은 곧 식민지 대학의 평범한 요구와 정면으로 부딪히게 됩니다.

카의 공식집
카의 책
백묵 계산
백묵
소년 시절
소년
쿰바코남
쿰바코남
나이11세경 앞지름
도구석판 · 백묵
학교15세에 1등
특징독학 · 신동
다른 사람들이 색을 보듯 수학을 하는 아이. 그런 재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11
A · 04 · 카의 책
카의 공식집과 궁핍
카의 공식집 — 증명이 거의 없이 약 5,000개의 정리만 나열한 책. 한 소년을 통째로 사로잡고 그의 장학금을 앗아 간 단 한 권의 책.
12
A · 04 · 카의 책 · 궁핍

한 권의 책, 그리고 잃어버린 장학금

1903년, 열다섯 살의 라마누잔은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습니다. G. S. 카의 〈기초 결과 개요〉였습니다. 그 책은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카의 책은 순수·응용 수학의 정리 약 5,000개를 증명은 거의 없이 나열한 책이었습니다. 결과만 하나씩 이어지는 책이었지요.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메마르고 다가가기 어려운 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마누잔에게 그것은 활짝 열린 문이었습니다. 그는 그 책을 통째로 삼키고는, 거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각 결과를 스스로 증명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확장하고 일반화하여 자기만의 새 공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의 집착이 다른 모든 것을 삼켜 버렸습니다. 대학에서 그는 모든 시간을 수학에 쏟아붓고 다른 과목 — 영어, 생리학, 역사 — 은 몇 번이고 낙제하여, 결국 장학금을 잃었습니다. 그는 두 번 대학에 들어갔고 두 번 중퇴했습니다. 학위도 없이, 집안마저 가난하여 그는 실제로 궁핍에 빠졌습니다. 때로는 굶주림에 가까운 처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1909년 그는 아직 어린 소녀였던 자나키와 중매로 혼인했고, 이 때문에 생계는 더욱 절박해졌습니다. 마침내 1912년, 그는 마드라스 항만청 회계과의 사무원이라는 소박한 자리를 얻습니다. 바로 그 사무원의 책상에서, 한 친구가 그에게 영국의 위대한 수학자들에게 편지를 써 보라고 권하게 됩니다.

카의 공식집 (1903)
규모약 5,000개 정리
낙방장학금 상실 · 중퇴
직업마드라스 항만청 사무원 (1912)
한 권의 책이 그를 수학자로 만들었고, 동시에 그의 학위를 앗아 갔습니다. 결국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요.
13
A · 05 · 편지
하디에게 보낸 편지
1913년 1월의 편지 — 마드라스의 이름 없는 한 사무원이, 증명 없는 정리들로 몇 장이고 채워 케임브리지의 낯선 이 G. H. 하디에게 부친 편지.
14
A · 05 · 편지 · 1913년 1월

영국의 낯선 이에게 보낸 편지

1913년 1월, 이름 없는 그 사무원은 친구들의 권유로 케임브리지의 G. H. 하디에게 편지를 씁니다. 약 120개의 정리를 적어 보냈지만, 증명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라마누잔은 이미 다른 두 명의 영국 수학자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모두 무시당했습니다. 세 번째 편지가 영국 최고의 순수 수학자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에게 갔습니다. 편지는 열 장에 이르렀고, 자기가 연봉 20파운드의 사무원이라는 조심스러운 인사로 시작하여, 급수·적분·연분수를 아우르는 정리들을 풀이 하나 없이 하나씩 나열했습니다.

그 목록은 기이했습니다. 어떤 공식은 이미 알려진 것이었고 몇 개는 그저 틀린 것이었지만, 다른 것들은 너무 깊고 너무 기이해서, 참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지어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디는 느꼈습니다. 그것은 괴짜의 글이 아니라, 세계의 먼 가장자리에서 오롯이 홀로 일하는 최고 수준의 수학자의 글처럼 보였습니다.

학위도 없고 정규 훈련도 받지 못한 마드라스의 한 사무원이, 회계 책상에 앉아 한 통의 편지를 부쳤습니다. 그 편지는 1년 반 안에 그를 바다 건너 케임브리지로 데려가게 됩니다. 하디가 그 편지를 어떻게 읽었는지, 그리고 그다음에 무엇을 했는지 — 거기서 제2부가 시작됩니다.

시기1913년 1월
수신G. H. 하디
내용약 120개 정리 · 증명 없음
보낸이연봉 20파운드 사무원
이름 없는 한 사무원이 증명 없는 정리 120개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당신 책상에 왔다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15
B
PART B · 5 STORIES · 수식

하디와의 만남

마드라스의 가난한 사무원이 보낸 편지 한 통이 영국 최고 순수 수학자의 아침 식탁 위에 놓이고, 수학이 바뀝니다. 제2부는 하디의 놀라움, 바다를 건넌 항해, 4년의 협업, 그리고 거기서 자라난 공식들을 따라갑니다.

한 통의 편지가 바다를 건넜고, 두 낯선 이가 함께 수학을 바꿨습니다.
16 · CHAPTER OPENER
16
PART B · 다섯 장면

한 통의 편지와 한 번의 항해

하디가 편지를 펼친 아침부터 약 3,900개의 공식이 담긴 노트까지, 두 정신이 만난 다섯 장면을 차례로 보여 드립니다.

B1

하디의 놀란 아침

1913년 편지를 읽다 · 트리니티 칼리지 · P.18
B2

바다를 건너

1914년 케임브리지 도착 · P.20
B3

4년의 협업

하디와 리틀우드 · 정반대의 만남 · P.22
B4

분할 함수

p(n)와 원 방법 · 1918년 · P.24
B5

노트 세 권

약 3,900개의 공식, 대부분 증명 없이 · P.26
17
B · 01 · 하디
편지를 읽는 하디
트리니티 칼리지의 G. H. 하디 — 마드라스의 이름 없는 사무원이 보낸 편지를 펼치고, 처음에는 사기라 의심했다가, 이내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18
B · 01 · 하디 · 1913년

누구도 지어낼 수 없는 것들

1913년의 어느 아침,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G. H. 하디는 마드라스에서 온 편지를 펼쳤습니다. 그 뒤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 두 사람의 삶을 한꺼번에 바꿔 놓습니다.

하디의 첫 반응은 의심이었습니다. 학위도 없는 낯선 이가 보낸 열 장짜리 편지, 기이해 보이는 공식들로 가득하고 증명은 하나도 없는 편지 — 필시 괴짜의 글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편지를 한쪽에 밀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식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친구이자 공동 연구자인 J. E. 리틀우드를 불렀고, 두 사람은 마주 앉아 그 페이지들을 하나씩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정 무렵 두 사람의 판정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습니다. 어떤 결과는 이미 알려진 것이었고 몇 개는 틀렸지만, 나머지는 그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이의 것이었습니다. 하디는 그 공식들이 "참일 수밖에 없다, 만약 참이 아니라면 누구도 그것을 지어낼 상상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므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는 훗날 라마누잔을 발견한 일을 자기 인생에서 단 하나의 진정으로 낭만적인 사건이라 불렀습니다.

하디는 즉시 따뜻한 답장을 보내, 증명을 청하고 케임브리지로 오라고 권했습니다. 곧 수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협업 중 하나가 될 편지 왕래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한 사람이 먼저 바다를 건너야 했습니다.

장소트리니티 칼리지
함께하디 · 리틀우드
판정"참일 수밖에 없다"
하디의 말인생 유일의 낭만적 사건
"누구도 그것을 지어낼 상상력은 없었을 것이다." 위대한 수학자에게 그렇게 말하게 하는 공식은 어떤 것일까요.
19
B · 02 · 도착
케임브리지 도착
1914년의 추운 봄 — 따뜻한 사원 마을에서 온 독실한 채식주의자가 배에서 내려, 집에서 먼 낯설고 얼어붙은 땅 케임브리지에 도착합니다.
20
B · 02 · 항해 · 1914년

바다를 건너

독실한 브라만에게 바다를 건너는 일은 카스트의 금기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에 가기에 앞서, 라마누잔에게는 어머니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전통에 따르면 정통 브라만이 바다를 건너면 카스트를 잃었습니다. 라마누잔의 어머니는 한동안 반대했습니다. 그러다 마음을 돌렸습니다. 여신 나마기리가 꿈에 나타나, 아들과 그의 사명 사이를 가로막지 말라 일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허락으로 길이 열렸습니다.

그는 마드라스에서 배를 타고 1914년의 추운 봄에 영국에 도착하여,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이르렀습니다. 따뜻한 사원 마을에서 온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던 그는, 이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수천 마일 밖 낯설고 얼어붙은 나라에서 자기 식단과 종교적 계율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는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추위에 몸을 싸매고, 스스로 밥을 지어 먹으며, 일했습니다.

적응은 고되었고, 뒷날 그의 건강에 큰 대가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재능을 대등하게 맞아 줄 세상 단 한 곳에 와 있었습니다. 하디와 리틀우드에게서, 마침내 라마누잔은 자기가 보는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허락어머니 · 나마기리의 꿈
도착1914년 봄 · 케임브리지
칼리지트리니티
어려움채식 · 추위 · 향수
자기 재능을 이해받을 유일한 곳에 닿기 위해, 그는 익숙한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요.
21
B · 03 · 협업
하디와 라마누잔의 협업
함께 일하는 하디와 라마누잔 — 정반대의 만남. 한 사람은 엄밀한 증명을 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늘 설명하지도 못하는 직관으로 답에 뛰어들었습니다.
22
B · 03 · 협업 · 1914-1919년

정반대의 두 사람

1914년부터 1919년까지, 하디와 라마누잔은 (자주 J. E. 리틀우드와 함께) 나란히 일했습니다. 수학이 알고 있는 가장 기이하고도 가장 결실 많은 협업 중 하나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보다 더 다를 수 없었습니다. 하디는 증명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엄밀한 영국 학자였고, 라마누잔은 자주 설명조차 못하는 직관의 도약으로 결과에 이르렀으며, 증명이 왜 필요한지조차 늘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디는 섬세한 과제를 스스로에게 지웠습니다. 한 천재에게 현대의 엄밀함을 가르치되, 그를 천재로 만든 바로 그 직관을 깨뜨리지 않는 것.

두 사람은 함께 일련의 기념비적인 논문들을 냈습니다. 하디는 언젠가 순수한 재능을 기준으로 수학자들의 등급을 매기며 가장 뛰어난 이에게 100을 두었습니다. 그 척도에서 그는 자신에게 25, 리틀우드에게 30, 위대한 다비트 힐베르트에게 80을 주었고 — 라마누잔에게는 100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수학적 힘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는 하디의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우정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디는 내성적이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라마누잔은 향수에 시달리며 점점 더 아파 갔습니다. 그럼에도 그 몇 해 동안, 세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던 두 사람은 함께 수학하는 법을 익혔고, 어느 한쪽도 홀로는 해낼 수 없었을 결과를 남겼습니다.

기간1914-1919
세 사람하디 · 리틀우드 · 라마누잔
하디의 척도라마누잔 = 100
대비엄밀함 ↔ 직관
하디는 자신에게 25, 라마누잔에게 100을 주었습니다. 남에게 그렇게 말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23
B · 04 · 분할
분할 함수 도해
분할 함수 p(n) — 한 자연수를 양의 정수들의 합으로 적는 방법의 가짓수. p(4) = 5이고, n이 커질수록 그 값은 폭발적으로 치솟습니다.
24
B · 04 · 분할 함수 · p(n)

더하는 가짓수를 세다

두 사람의 공동 발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분할 함수 p(n)에 관한 것입니다. 자연수에 관한, 겉보기에는 단순한 한 가지 질문이었습니다.

한 자연수를 두고 이렇게 묻습니다. 그것을 순서를 무시하고 양의 자연수들의 합으로 적는 방법은 몇 가지인가? 4는 다섯 가지 — 4, 3+1, 2+2, 2+1+1, 1+1+1+1 — 이므로 p(4) = 5입니다. 이 질문은 아이들 장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수가 커질수록 그 가짓수는 폭발합니다. p(10)은 벌써 42이고, p(100)은 1억 9천만이 넘습니다.

p(n)에 대한 간단한 공식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1918년 하디와 라마누잔은 놀라운 공식을 찾아냅니다. 정확한 공식이 아니라 점근 공식으로, 큰 n에 대해서는 거의 정확할 만큼 참값에 가까운 값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그들은 새 기법을 고안했는데, 복소평면 위 어떤 함수들의 깊은 구조를 이용하는 '원 방법(circle method)'이었습니다.

원 방법은 이후 분할을 훨씬 넘어서는 곳에서까지 쓰이는, 현대 정수론의 핵심 도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수를 더하는 방법이 몇 가지냐는 단순한 질문이, 두 사람의 손에서 그 뒤에 올 수학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도구로 열렸던 것입니다.

함수분할 함수 p(n)
p(4) = 5
발견1918 점근 공식
기법원 방법
5를 합으로 적는 방법은 몇 가지일까요. 직접 적어 본 뒤 p(5) = 7과 맞춰 보세요.
25
B · 05 · 노트
라마누잔의 노트
"나는 그저 본 것을 적었을 뿐입니다." 그는 평생 노트에 약 3,900개의 결과를 채워 넣었고, 그 대부분에는 아무런 증명이 없었습니다.
26
B · 05 · 노트

노트 세 권, 3,900개의 공식

라마누잔의 진짜 유산은 몇 개의 유명한 정리가 아니라 그의 노트들입니다. 한 장 한 장 이어지는 결과들, 그 대부분에 증명이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세 권의 노트에 약 3,900개의 결과 — 항등식, 급수, 연분수, 그리고 정수론의 결과들 — 를 채워 넣었습니다. 훗날 마지막 해에 그는 낱장의 종이에 더 많은 것을 적었고, 그것이 '잃어버린 노트북'이 됩니다. 그는 답만 적었을 뿐 그 근거는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결과는 그저 나타나는 것이었고, 증명을 써 내려가는 일은 때때로 요점에서 벗어난 일처럼 보였습니다.

뒤에 온 수학자들에게 이것은 한 세기의 과제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노트들에 담긴 주장을 증명하는 데 백 년 넘는 시간을 써 왔고 — 거의 하나하나가 참으로 밝혀졌습니다. 몇 개는 틀렸고, 여럿은 이미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랄 만큼 많은 것이 참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고, 그것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수학의 새 영역들이 통째로 열렸습니다.

한 사람이 대개는 홀로, 자주는 증명도 없이 일하면서 그토록 한결같이 옳았다는 사실은 수학의 깊은 수수께끼 중 하나입니다. 그의 노트는 그가 증명한 것의 기록이라기보다, 그가 어떻게든 본 것의 지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의 많은 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읽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노트세 권 + 잃어버린 노트북
결과약 3,900개
특징대부분 증명 없음
검증백 년 넘게 · 거의 모두 참
그는 증명 없이 답을 적었고, 한 세기의 수학자들이 그가 옳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27
C
PART C · 5 STORIES · 이방인

이방인의 나날

따뜻한 사원 마을에서 온 독실한 채식주의자가, 전시의 차가운 케임브리지에서 홀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병들어 갑니다. 택시 번호 1729에서 병원으로, 왕립학회 회원으로,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해까지 — 집에서 먼 한 이방인의 나날의 다섯 장면입니다.

집에서 먼 곳에서, 한 이방인이 유명해지는 동시에 병들어 갔습니다.
28 · CHAPTER OPENER
28
PART C · 다섯 장면

고향에서 먼 나날

유명한 택시 번호에서 병실로, 왕립학회로, 인도로 돌아가는 길까지, 한 이방인의 나날의 다섯 장면을 차례로 보여 드립니다.

C1

택시 번호 1729

따분해 보였지만 흥미로웠던 수 · P.30
C2

병원의 나날

병과 요양원, 그리고 전시의 궁핍 · P.32
C3

왕립학회 회원

1918년 · 역대 최연소급 선출 · P.34
C4

인도로 돌아가다

1919년 · 건강이 무너진 채 귀향 · P.36
C5

우정 — 하디와 라마누잔

수학으로 묶인 정반대의 두 사람 · P.38
29
C · 01 · 1729
택시 번호 1729
택시 번호 1729 — 하디가 자기 택시 번호를 따분하다 말하자, 라마누잔은 병상에서 사실 그 수가 아주 흥미롭다고 답했습니다.
30
C · 01 · 택시 번호

1729라는 수

라마누잔의 생애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이고, 하디가 직접 전한 이야기입니다. 그 일은 병상 곁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디는 병원에 입원해 있던 라마누잔을 문병하러 갔고 — 하디답게 — 가벼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타고 온 택시 번호 1729가 꽤 따분한 수 같았다며, 나쁜 징조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라마누잔은 곧바로, 오히려 그것이 아주 흥미로운 수라고 답했습니다.

그것은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적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수입니다. 1729 = 1³ + 12³ = 9³ + 10³. 산수는 쉽게 확인됩니다 — 1 + 1728 = 1729, 그리고 729 + 1000 = 1729 — 그리고 그보다 작은 수 중에는 이 성질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라마누잔은 그 자리에서 계산한 것이 아니라, 자연수를 오랜 친구처럼 알듯 그냥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질을 가진 수들은 그날을 기려 지금 '택시 번호(taxicab number)'라 불립니다. 이 일화가 사랑받는 것은 그에 관한 참된 무언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마누잔에게 평범한 자연수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낯선 나라의 병상에서조차, 숫자들은 여전히 그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1729
성질1³+12³ = 9³+10³
이름택시 번호
전한 이하디
1729 = 1³ + 12³ = 9³ + 10³.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두 가지로 적을 수 있는 그다음 수는 무엇일까요.
31
C · 02 · 병원
병원의 라마누잔
전시 영국의 한 요양원 — 중병에 걸려 춥고 집에서 먼 곳에서, 라마누잔은 병상에서도 여전히 종이를 공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32
C · 02 · 병 · 1917-1919년

고향에서 먼 곳에서 병들다

1917년부터 라마누잔은 심하게 앓았습니다. 영국에서의 영광의 시기는 동시에 건강이 꾸준히 무너져 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병은 오랫동안 결핵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날 많은 의사들은 그것이 심한 비타민 결핍, 어쩌면 간 아메바증 — 인도에서 지니고 왔을 수 있는 간의 기생충 감염 — 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든, 주변의 환경이 그것을 훨씬 악화시켰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심각한 식량 부족을 불러왔고, 전시 영국에서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던 라마누잔은 필요한 음식을 구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춥고 습한 기후, 외로움, 그리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밤새 일하는 자신의 습관까지 모두가 대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영국 곳곳의 요양원과 요양 시설에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병상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종이를 공식으로 채웠고 — 그의 가장 깊은 결과 중 일부가 바로 이 아픈 해들에서 나왔습니다. 병이 그의 몸을 앗아 갔지만, 숫자가 있는 그곳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시기1917년부터
원인비타민 결핍 · 간 아메바증(추정)
악화전시 식량난 · 추위
그럼에도병상에서 공식 작업
병상을 벗어나지 못할 만큼 아픈 중에도 그는 공식을 계속 적었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일하게 할까요.
33
C · 03 · 왕립학회
왕립학회 회원 선출
1918년 — 대학을 낙제했던 가난한 사무원이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됩니다. 역대 최연소급이자 최초의 인도인 중 한 사람. 영국 과학의 가장 높은 영예였습니다.
34
C · 03 · 왕립학회 회원 · 1918년

가장 높은 영예

1918년, 서른 살의 라마누잔은 그의 재능에 걸맞은 인정을 받습니다. 그의 몸이 무너져 가고 있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해 그는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됩니다. 역대 최연소급 회원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영예를 받은 최초의 인도인 중 하나였습니다. 1660년에 세워진 왕립학회의 회원 선출은 영국 과학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인정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특별 연구원으로도 선출되는데, 그 영예를 받은 최초의 인도인이었습니다.

대학을 두 번 중퇴하고 영어와 생리학을 낙제했던 가난한 사무원이, 이제 영국 과학의 가장 높은 영예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쿰바코남의 사원 바닥에서 왕립학회 회원까지의 거리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학위도, 정리들이 담긴 책 한 권 말고는 스승도 없이, 단 몇 해 만에 그 거리를 건넜습니다.

하디는 그 영예들이 라마누잔의 기운을 북돋우고 회복을 도우리라 기대했습니다. 한동안은 그랬습니다. 그러나 인정과 병은 함께 찾아왔고, 한쪽의 그림자가 늘 다른 한쪽의 빛 위에 드리워 있었습니다.

시기1918년 · 30세
영예왕립학회 회원 (FRS)
또한트리니티 칼리지 특별연구원
의미최연소급 · 최초의 인도인 중 하나
사원 바닥에서 왕립학회까지, 단 몇 해 만에. 그런 여정은 한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할까요.
35
C · 04 · 귀향
인도로 돌아가는 배
1919년 — 건강이 무너진 라마누잔이 배를 타고 인도로 돌아갑니다. 영웅으로 환대받지만 여전히 쇠약했고, 거의 마지막까지 일을 이어 갑니다.
36
C · 04 · 귀향 · 1919년

고향으로 돌아가다

1919년, 전쟁이 끝나고 건강이 무너진 라마누잔은 인도행 배에 올랐습니다. 그는 회복하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 아무도 감히 말하지는 못했지만 — 가족 가까이에서 생을 마치러 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다섯 해 전 그는 온갖 금기를 무릅쓰고 이름 없는 사무원으로 바다를 건넜습니다. 이제 그는 인도가 배출한 가장 이름난 수학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왕립학회 회원이었고, 그의 이름은 케임브리지와 마드라스 모두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그는 영웅으로 환대받았고, 대학들과 그를 흠모하는 이들이 그의 곁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중병에 시달렸지만, 그러면서도 수학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고향에서의 마지막 해에 그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업 중 일부 — 신비로운 '모형 세타 함수' — 를 해냈고, 기력이 스러져 가는 중에도 낱장의 종이에 적어 나갔습니다. 어린 아내 자나키가 그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를 간호했습니다.

그는 자기 재능을 이해받기 위해 인도를 떠났고, 자기를 만든 사원 마을 곁에 생을 내려놓기 위해 다시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그 마지막 몇 달의 공식들은 오십 년 넘게 읽히지 않은 채 잠들어 있다가 — 이윽고 세상을 깨우게 됩니다.

시기1919년
귀향영웅으로 환대
마지막 작업모형 세타 함수
곁에아내 자나키
그는 쉬러 고향에 돌아와서는 도리어 생애 최고의 작업을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그렇게 일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37
C · 05 · 우정
하디와 라마누잔의 우정
하디와 라마누잔 — 내성적인 영국 학자와 독실한 남인도의 몽상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제국의 경계를 가로질러 수학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38
C · 05 · 우정

두 정신, 하나의 수학

라마누잔의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하디와의 우정입니다. 이보다 더 다를 수 없었던, 그러나 이보다 더 서로를 필요로 할 수 없었던 두 사람.

하디는 신을 믿지 않는 영국의 합리주의자였고, 라마누잔은 자기 공식이 여신에게서 온다고 믿는 독실한 힌두교도였습니다. 하디는 증명으로 살았고, 라마누잔은 직관으로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교육의 온갖 혜택을 누렸고, 다른 한 사람은 거의 아무것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제국과 종교, 기질과 훈련의 경계를 가로질러, 두 사람은 수학이라는 단 하나의 땅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했습니다.

하디는 늘, 수학에 대한 자기 최대의 기여는 라마누잔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라마누잔을 지키고 옹호했으며, 그의 직관에서 증명을 씨름하듯 끌어냈고, 남은 평생 그를 애도했습니다. 두 사람의 협업이 낳은 것은 어느 한쪽도 홀로는 만들 수 없었을 것이며 — 그것이 지닌 의미는 어떤 단 하나의 정리보다도 컸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흔히 천재가 어디에서든 나올 수 있다는 증거로 이야기되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알아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낯선 이의 편지 속에서 자기보다 위대한 정신을 알아볼 아량을 지녔고, 세상도 그것을 보게 하려고 자신을 다 쏟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라마누잔의 노트
노트
1729
1729
병원
병원
왕립학회
왕립학회
하디합리주의 · 증명
라마누잔신앙 · 직관
공통수학이라는 한 땅
하디의 말내 최대 기여는 그의 발견
거의 아무것에도 동의하지 않던 두 사람이 수학에서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39
D
PART D · 5 STORIES · 후세

잠들지 않은 공식

라마누잔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공식들은 그가 결코 상상할 수 없던 곳에서 십 년마다 계속 깨어났습니다. 1976년에 재발견된 잃어버린 노트북, 그의 주장을 증명한 한 세기의 수학자들, 블랙홀의 물리학 속에서 나타난 모형 세타 함수, 그리고 그 모든 것 뒤에 언제나 여신 나마기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젊어서 떠났지만, 그의 공식들은 십 년마다 계속 깨어났습니다.
40 · CHAPTER OPENER
40
PART D · 다섯 이야기

깨어남의 백 년

도서관 상자에서 발견된 잃어버린 노트북에서 블랙홀의 엔트로피까지, 한 사람의 공식들이 어떻게 계속 깨어났는지를 다섯 장면으로 차례로 보여 드립니다.

D1

잃어버린 노트북

1976년 발견 · 모형 세타 함수 · P.42
D2

백 년의 연구

번트를 비롯한 이들이 3,900개를 증명하다 · P.44
D3

블랙홀과 만나다

끈이론과 양자 중력 · P.46
D4

오늘의 라마누잔

π 알고리즘 · 전기 · 2015년 영화 · P.48
D5

나마기리 여신

꿈이 주었다는 공식들 · P.50
41
D · 01 · 잃어버린노트
잃어버린 노트북과 모형 세타 함수
잃어버린 노트북 — 그의 신비로운 모형 세타 함수가 담긴 마지막 해의 낱장들. 1976년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의 한 상자에서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42
D · 01 · 죽음 · 잃어버린 노트북

도서관 상자에서 발견되다

라마누잔은 1920년 4월 26일,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해에 적은 낱장들에는 아직 건네줄 한 장이 더 남아 있었습니다.

생애 마지막 해, 인도에서 대개는 병상에 누워 지내던 라마누잔은 자기가 '모형 세타 함수(mock theta functions)'라 부른 기이한 새 함수들을 발견합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겨우 몇 달 전인 1920년 1월, 하디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그것들을 설명했습니다. 하디조차 그것들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은 당대의 수학에 있던 어떤 것과도 달랐습니다.

그러다 그 페이지들이 사라졌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그것들은 다른 서류들 사이에 섞인 채 읽히지 않고 놓여 있었습니다. 1976년, 미국 수학자 조지 앤드루스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서 하디의 유품 상자를 뒤지다가, 라마누잔의 필체로 된 약 백 장의 낱장을 발견합니다 — 이른바 '잃어버린 노트북'입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교향곡을 찾아낸 것에 견줄 만한 수학적 사건으로 반겨졌습니다.

그 페이지들 안에는 모형 세타 함수가 온전히 담겨 있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죽은 지 쉰여섯 해가 된 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 내놓을 새 수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가장 기이한 대목 — 그 함수들이 결국 어디에서 나타나게 되는지 — 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망1920년 4월 26일 · 32세
마지막 발견모형 세타 함수
발견자조지 앤드루스 · 1976
장소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그가 죽고 쉰여섯 해 뒤, 잃어버린 백 장의 종이가 한 상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직 읽히지 않은 채 기다리는 것이 또 있을까요.
43
D · 02 · 백 년
백 년의 연구
백 년의 책상들 — 수학자들은 백 년이 넘도록 라마누잔의 노트를 파고들어 결과를 하나씩 증명해 왔고, 거의 매번 그가 옳았음을 확인했습니다.
44
D · 02 · 백 년의 연구

하나씩, 그가 옳았음을 증명하다

라마누잔은 약 3,900개의 결과를 대부분 증명 없이 남겼습니다. 그것들을 파고드는 일이 백 년 넘게 수학자들을 붙들어 왔습니다.

하디 자신의 시대부터 줄곧, 수학자들은 그 노트들을 붙잡고 라마누잔이 한 번도 적지 않은 증명들을 채워 넣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것은 더디고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짧은 한 줄 한 줄이 깊은 정리를 감추고 있을 수 있었고, 어떤 것은 라마누잔이 그 결과를 적었을 때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던 수학을 필요로 했습니다.

미국 수학자 브루스 번트는 수십 년에 걸쳐 그 노트 전체를 편집하고 증명하여 여러 권의 두꺼운 책으로 채웠고 — 거의 하나하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조지 앤드루스, 켄 오노,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라마누잔이 그저 적어 둔 결과들 위에 평생의 연구 이력을 쌓았습니다. 몇 번이고, 그의 직관은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옳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수수께끼는 오히려 또렷해졌습니다. 식민지 인도에서 홀로 일한 독학자가, 어떻게 세계의 수학자들이 한 세기 걸려서야 따라잡을 진리들에 이르렀을까? 아무도 온전한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노트들은 계속 내주었고, 십 년마다 그 안에 아직 접혀 있던 새 수학을 찾아냈습니다.

규모약 3,900개의 결과
편집브루스 번트 · 수십 년
계승앤드루스 · 켄 오노
결과거의 모두 참
한 사람이 그저 적어 둔 것을 증명하는 데 세상은 한 세기가 걸렸습니다.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45
D · 03 · 블랙홀
블랙홀과 모형 세타 함수
블랙홀 —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라마누잔의 모형 세타 함수가 끈이론에서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기술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병실에서 그어진 한 줄이 블랙홀의 가장자리에 닿은 것입니다.
46
D · 03 · 블랙홀 · 끈이론

병실의 한 줄이 블랙홀에 닿다

이것이 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기이한 전환입니다. 라마누잔이 물리학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임종의 자리에서 적은 모형 세타 함수가, 블랙홀을 기술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십 년 동안 모형 세타 함수는 순수 수학 안의 아름다운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 자신 바깥의 어떤 것과도 이어지지 않은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끈이론과 양자 중력을 연구하던 물리학자들이 그것들이 전혀 뜻밖의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블랙홀의 미시적 양자 상태를 헤아리는 수학이었습니다.

블랙홀의 엔트로피는, 대략, 그것이 담을 수 있는 양자 상태가 몇 가지인지를 재는 척도입니다. 켄 오노를 비롯한 이들과 이어진 연구는, 라마누잔의 모형 세타 함수가 바로 그 상태들을 정리하고 헤아리는 데 꼭 맞는 도구임을 보였습니다. 마드라스의 한 병실에서 그어진 한 줄이 한 세기를 건너뛰어 블랙홀의 가장자리에 닿은 것입니다.

라마누잔은 1920년, 누구도 블랙홀 엔트로피나 끈이론을 입에 올리기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짓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함수들은, 팔십 년 뒤에나 존재할 물리학을 위해, 꼭 맞는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학에서 이보다 더 기이하거나 더 아름다운 이야기는 드뭅니다.

대상모형 세타 함수
쓰임블랙홀 엔트로피
분야끈이론 · 양자 중력
연결켄 오노 외
그는 팔십 년 뒤에 블랙홀을 기술할 공식을 1920년에 적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47
D · 04 · 오늘
오늘의 라마누잔
오늘의 라마누잔 — π를 수십억 자리까지 계산하는 그의 급수, 신호 처리와 확률에 쓰이는 그의 항등식, 그리고 전기와 2015년 영화로 전해진 그의 삶.
48
D · 04 · 오늘의 영향

오늘의 라마누잔

한 세기가 지난 지금, 한 사람의 공식들은 어디에서 여전히 나타날까. 우리 세상의 여러 자리에서 그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π의 계산입니다. 1914년 라마누잔은 1/π에 대한 놀랄 만큼 빠르게 수렴하는 급수들을 찾아냈고, 그것들의 현대적 변형이 π를 수십억, 수조 자리까지 계산하는 데 쓰입니다. 두 번째는 정수론입니다. 분할 함수와 원 방법에 관한 그의 연구는 수학자들이 자연수를 다루는 방식의 영구적인 일부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과학과 공학입니다. 그의 항등식과 특수 함수들은 결정학, 신호 처리, 그리고 확률과 통계에 나타납니다. 네 번째는 모형 세타 함수로, 이제 블랙홀의 물리학 속에 짜여 들어가 있습니다. 죽어 가던 한 사람이 오로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적은 공식들이, 한 세기 뒤에는 평범한 실용 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그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전기 〈무한을 본 남자(The Man Who Knew Infinity)〉(로버트 카니겔, 1991)와 같은 제목의 2015년 영화를 통해 더 넓은 세상에 닿았습니다. 매년 12월 22일 — 그의 생일 — 에 인도는 '국가 수학의 날'을 기립니다. 사원 마을의 가난한 소년이, 수백만 사람에게 수학적 정신이 무엇일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바로 그 상징이 된 것입니다.

자리1π 초고속 급수
자리2정수론 · 분할
자리3모형 세타 · 블랙홀
자리4영화 · 국가 수학의 날
매년 12월 22일, 인도는 한 수학자의 생일을 기립니다. 당신이라면 누구의 생일을 기리고 싶으세요, 그리고 왜일까요.
49
D · 05 · 나마기리
여신 나마기리
나마칼의 여신 나마기리 타야르 — 라마누잔이 자기 발견의 공을 돌린 신이자, 잠든 자기 혀 위에 공식을 놓아 준다고 믿었던 존재.
50
D · 05 · 여신 · 나마기리

신의 생각으로서의 방정식

라마누잔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방정식은 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가 시작한 자리에서 끝맺어야 합니다 — 신앙에서.

평생 라마누잔은 자기 발견의 공을, 자기 집안이 섬기던 나마칼의 여신 나마기리 타야르에게 돌렸습니다. 그는 여신이 꿈에 나타나 자기 혀 위에 공식을 놓아 주었고, 깨어나면 자기가 보여진 것을 적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수학과 신앙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었습니다. 둘 다 같은 진리에 닿는 길이었습니다.

합리주의자는 그것을 직관이라 부를 것이고, 독실한 힌두교도는 은총이라 부를 것이며, 어쩌면 둘 사이를 가릴 방법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정규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사원 마을의 가난한 소년이, 지금껏 살았던 거의 누구보다도 수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통찰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수학이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남인도의 한 사원 마을에서 케임브리지로, 병상으로, 그리고 다시 블랙홀의 가장자리까지 따라왔습니다. 그것을 영감이라 부르든 직관이라 부르든 여신의 선물이라 부르든, 담담한 사실은 남습니다 — 그리고 그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로 남는다는 것이,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에 가장 어울리는 마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신나마기리 타야르
그의 말방정식 = 신의 생각
해석직관인가 은총인가
남는 것수수께끼
영감일까, 직관일까, 아니면 여신의 선물일까 — 그의 공식들은 정말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세요?
51
APPENDIX · 시대 연표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의 한 생애

시대 연표

1887 12월 22일 인도 남부 에로데에서 출생

1898 사원 마을 쿰바코남에서 학교 생활

1903경 카의 공식집을 얻어 통째로 읽다

1904 다른 과목 낙제로 장학금 상실

1909 자나키와 중매 혼인

1912 마드라스 항만청 사무원

1913 G. H. 하디에게 편지를 보내다

1914 케임브리지 도착

1918 왕립학회 · 트리니티 칼리지 회원

1919 건강이 무너진 채 인도로 귀향

1920 32세에 사망 · 모형 세타 함수

1976 조지 앤드루스가 잃어버린 노트북 재발견

52
APPENDIX · 핵심 수식 일곱

그가 남긴 일곱 공식

핵심 수식 도해

1. 분할 함수 p(n) — n을 양의 정수들의 합으로 적는 가짓수. p(4) = 5.

2. 하디–라마누잔 공식 — 1918년, 원 방법으로 찾은 p(n)의 점근 공식.

3. 택시 번호 — 1729 = 1³ + 12³ = 9³ + 10³. 두 세제곱합으로 두 가지가 되는 최소수.

4. 1/π의 급수 — 1914년의 초고속 수렴 급수. 현대 π 계산의 바탕.

5. 모형 세타 함수 — 마지막 발견(1920). 오늘날 블랙홀 물리학에 쓰인다.

6. 고도 합성수 — 1915년, 더 작은 어떤 수보다 약수가 많은 수에 관한 연구.

7. 노트 — 대부분 증명 없는 약 3,900개의 결과. 훗날 거의 모두 참으로 증명됨.

53
COLOPHON · 닫는 글

한 사람을 다 따라간 후

EDITORIAL

Editor — Luna Whale
Curator — 손창범 (루나웨일 아트랩 원장)
2026년 6월 1일 1쇄

본 호의 4부 + 20 장면

A 사람 5장면 · B 수식 5장면 · C 이방인 5장면 · D 후세 5장면 · 부록(연표·수식 도해). 한 사람이 흔든 시대 전체를 한 권에 정리하는 잡지.

주요 참고

로버트 카니겔 〈무한을 본 남자, 1991〉 · G. H. 하디 〈라마누잔: 열두 강의, 1940〉 · 브루스 C. 번트 〈라마누잔의 노트북〉(슈프링거) ·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잃어버린 노트북 · 〈The Ramanujan Journal〉.

관련 게임

루나 수학의 〈피타고라스 투석기〉, 〈갈릴레이 투석기〉 등 수학자 게임 6종은 본 호 메타 박스의 인물별 게임 링크에서 직접 실행할 수 있습니다.

NEXT ISSUE · Vol.04 예고
공식의 일생

한 사람을 따라가는 데서, 한 공식을 따라가는 데로. 다음 호는 루나 수학의 〈공식〉 시리즈를 엽니다 —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오일러 항등식까지, 한 수식의 탄생과 방랑과 일생.

LUNA WHALE · MATH ISSUE VOL.03 · LUNA M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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