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근대 이전 한국사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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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회의 성립과 발전

travel_explore 이 단원은?

조선의 건국과 유교적 성리학 이념에 기초한 국가 기틀의 마련,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추구한 중앙 정치 및 지방 행정 체제의 정비, 사림의 성장과 사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극복 및 비변사 중심의 전후 정치 운영의 변화를 탐구합니다.

hotel_class 이 단원에서 배우는 것!

  • 조선 전기의 통치 체제 정비 과정(의정부 서사제, 경국대전 반포 등)과 지배 세력(훈구·사림)의 정치적 갈등과 사화의 성격을 사료로 파악합니다.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양란의 발발 원인과 극복 과정, 전후 대외 관계의 변화 및 비변사 중심의 정치 기구 개편 과정을 분석합니다.
핵심 키워드 3
의정부서사제
사림과 사화
비변사독점

navigation 오늘의 학습 로드맵

안녕! 고려의 불교 중심 질서를 딛고 성리학이라는 강력한 유교 규범을 국가 기틀로 삼아 법치와 덕치의 나라를 지향했던 조선, 그리고 숱한 국난 속에서도 자주성을 지키며 기구를 개편해가던 조선의 역사 속으로 떠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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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핵심 용어 TALK
경국대전 (經國大典) 클릭
사림 (士林) 클릭
비변사 (備邊司) 클릭
조선 사회의 성립 및 정치 제도 변화 흐름
info 각 단계를 클릭하면 상세 설명과 유물 도록이 열립니다.
건국과 법치 volume_up

건국과 유교 정치 기틀 정비

• 1392년 성리학 이념으로 건국

• 세종의 의정부 서사제와 왕권 조화

법전 완성 volume_up

경국대전 편찬과 유교 법치

• 성종 대 경국대전 6전 체제 완성

• 사헌부·사간원·홍문관 3사 권능

사림의 성장 volume_up

훈구·사림 갈등과 사화의 발발

• 사림 등용 후 훈구 대립과 4대 사화

•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향촌 장악

양란 극복 volume_up

왜란·호란의 전개와 국난 극복

• 임진왜란(수군·의병)과 병자호란

• 청에 대한 대외 인식(북벌·북학)

비변사 독점 volume_up

비변사 중심 정치 운영 변화

• 전후 비변사 최고 상설 국정화

• 훈련도감 등 5군영 군사체제 개편

auto_stories 조선 시대 대표 유물 도록 박물관 유물 서랍을 눌러 해설을 탐구하세요!

조선 유물 서랍 열기

경복궁, 종묘, 소학, 삼강행실도, 그리고 조선 민본 정치와 과학 기술의 정수인 앙부일구 해시계 등 찬란한 조선 시대의 유산을 탐색하세요.

생각 더하기 내 생각을 사료 분석과 함께 정리해 보자!

《조선왕조실록》 세조 조 기록: "국조의 시조께서 율(律)·도(度)·양(量)·형(衡)을 지어 법전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완결치 못했다. 법을 세워 대대로 전하는 기본 규칙을 법전(經國大典)으로 삼고자 하니..." 이 사료를 바탕으로 조선 왕조가 성종 대에 법전인 《경국대전》을 최종 완성하여 반포한 것이 조선의 국가 기틀 정비와 유교적 법치 체제 확립에 가진 역사적 의의를 서술하시오.

checklist 시험에 자주 나오는 포인트
번호를 눌러 미니 퀴즈를 풀어보세요!
  • 1 조선 전기 왕과 재상이 정무를 논의하여 합의하고 결정함으로써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도모한 핵심 정치 기구 제도의 명칭 quiz
  • 2 성종 때 기용된 사림 세력이 훈구 세력과의 거듭된 대립 끝에 겪은 가혹한 탄압과 사림 숙청 정치 파동의 명칭 quiz
  • 3 임진왜란 이후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최고 정치 기구로 상설화되어 의정부와 6조의 통치 권능을 무력화시킨 기구 quiz
  • 4 세종 대에 백성들을 위해 둥근 가마솥 모양으로 제작한 조선의 대표적인 과학 유산이자 공공 해시계의 이름 quiz
더 알아두면 좋아!
  • 태종과 세조는 판서들이 직접 왕에게 국정을 보고하는 6조 직계제를 시행해 왕권을 드높였고, 세종과 성종은 의정부 서사제로 조화를 꾀했습니다.
  • 사림은 서원을 통해 후진을 양성하며 학맥을 공고히 하고, 향약을 통해 향촌 주민을 교화하여 훈구의 중앙 공격에도 질긴 생명력을 보였습니다.
  • 임진왜란 초기 관군의 패배 속에서 곽재우, 조헌 등 사림 양반과 백성, 승려 등이 조직한 의병들이 지리에 익숙함을 무기로 유격전을 펼쳐 국난을 극복했습니다.
  • 병자호란 이후 인조 대에 청에 대한 적대감으로 북벌론(청 정벌)이 대두했으나, 후기에는 청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론(실학)으로 발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