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근대 이전 한국사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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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새로운 흐름

travel_explore 이 단원은?

조선 후기 이앙법(모내기법)의 보급에 따른 농업 생산성 증대와 광작 농업의 대두, 대동법 실시와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 납속책과 공명첩을 통한 신분제의 격격한 동요와 사회 변화, 실학의 대두와 개혁 사상, 그리고 판소리와 한글 소설 등 서민 문화의 유행과 발전 과정을 분석합니다.

hotel_class 이 단원에서 배우는 것!

  • 모내기법 보급에 따른 광작과 대동법 실시가 상품 화폐 경제 및 상업 발달, 그리고 신분 신분제의 변동(양반 인구 증가 등)에 미친 상관 관계를 사료로 이해합니다.
  • 실학자들의 토지 제도 및 상공업 개혁론을 파악하고, 판소리·풍속화·한글 소설을 통해 표출된 서민들의 자의식과 서민 문화의 성격을 분석합니다.
핵심 키워드 3
대동법
신분제 동요
실학과 서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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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양란 이후 조선 후기 사회는 겉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아래로부터 농업과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며 신분제가 크게 요동치고,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과 서민들의 솔직한 감정을 담은 서민 문화가 피어났어! 상인 사자와 함께 이 역동적인 새로운 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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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핵심 용어 TALK
대동법 (大同法) 클릭
신분제 동요 (身分制 動搖) 클릭
실학 (實學) 클릭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문화적 변화 흐름
info 각 단계를 클릭하면 상세 설명과 유물 도록이 열립니다.
모내기법 보급 volume_up

농업 기술 발달과 모내기법 보급

• 모내기법(이앙법) 전국 보급

• 노동력 절감, 광작 농업 성행

상업 발달 volume_up

대동법 실시와 상품 화폐 경제

• 대동법 실시로 공인 상인 등장

• 장시 발달 및 상평통보 전국 유통

신분제 동요 volume_up

신분제 동요와 사회 신분 변동

• 납속책·공명첩 발급으로 신분 상승

• 양반 비정상적 급증, 노비 감소

실학 대두 volume_up

실학의 대두와 사회 개혁안

• 중농(토지개혁) vs 중상(상공업)

• 청 선진 기술 수용(북학) 강조

서민문화 발달 volume_up

서민 문화의 성장과 유행

• 한글 소설, 사설시조 유행

• 판소리·탈춤으로 양반 위선 폭로

auto_stories 조선 후기 대표 유물 도록 박물관 유물 서랍을 눌러 해설을 탐구하세요!

조선 유물 서랍 열기

대동여지도, 풍속화, 한글 소설, 민화 까치호랑이, 그리고 평민들의 삶과 함께 호흡했던 판소리 북 등 조선 후기 유산을 탐색하세요.

생각 더하기 내 생각을 사료 분석과 함께 정리해 보자!

《목민심서》(정약용) 기록: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백성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여위고 곤궁하여 진구렁에 구르고 있다..." 이 사료와 조선 후기 세도 정치 시기 삼정의 문란(전정, 군정, 환곡)으로 인한 농민의 곤궁한 처지를 바탕으로, 부유한 농민들이 납속과 공명첩을 통해 양반 신분을 획득한 배경과 이러한 신분제 변동이 전통 사회의 해체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서술하시오.

checklist 시험에 자주 나오는 포인트
번호를 눌러 미니 퀴즈를 풀어보세요!
  • 1 조선 후기 특산물 대신 토지 결수(1결당 쌀 12두)를 기준으로 쌀, 대동전, 포 등으로 세금을 통일하여 징수한 납세 제도의 이름 quiz
  • 2 조선 후기 재산을 모은 상민들이 납속을 하거나 관청에서 기부금을 받고 발급해 준 이름 적는 란이 비어 있는 공명 직첩의 약칭 quiz
  • 3 조선 후기 농촌 경제의 근본적 모순인 토지 제도를 우선적으로 개혁하고자 자영농을 육성하려 한 실학 학파의 명칭 quiz
  • 4 조선 후기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추어 노래와 재담으로 긴 이야기를 서민들의 해학과 함께 엮어 유행시킨 성악 예술의 종류 quiz
더 알아두면 좋아!
  • 대동법으로 등장한 공인은 관청 물품을 조달하며 대량 매매를 활성화시켜 상업 장시(시장)와 수공업을 촉발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 신분제 동요로 조선 후기 울산부 호적대장 등의 분석에 따르면, 초기 양반 비율은 10% 미만이었으나 말기에는 70%를 상회할 정도로 왜곡되었습니다.
  • 중농학파 실학자인 유형원은 균전론을, 이익은 영업전을 한정하는 한전론을, 정약용은 여전론과 정전론을 통해 농민 토지 제도의 안정을 꾀했습니다.
  • 중상학파(북학파)인 박제가는 《북학의》를 통해 소비가 생산을 자극한다는 생산 유통론을 주장하여 절약만을 미덕으로 삼던 성리학적 한계를 깼습니다.